수상한 손님들
written by. 소리
포와로는 분주했다. 할로윈 주간의 마지막 날이자 할로윈 이벤트 당일. 오후 출근이었던 아무로는 아즈사에게 인사를 건넬 새도 없이 직원 휴게실에서 뱀파이어 코스튬으로 갈아입고 바삐 주방으로 나왔다. 포와로는 평소보다 조명을 어둡게 하여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해골과 호박, 거미줄 모양의 깜찍한 장식들 덕에 아이들도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아즈사 씨. 잠깐 쉬고 계세요."
"염치 없지만 도저히 거절을 못하겠네요. 딱 10분만 부탁해요!"
'뱀파이어의 혈액팩'과 '마녀 정식' 주문을 아무로에게 건네며 아즈사는 휴게실로 빨려 들어가다시피 직행했다. 할로윈 주간동안 일시적으로 바뀐 메뉴 이름은 포와로 마스터의 작품이었다. 아무로는 히비스커스 티백을 티팟에 우리고 손가락처럼 손질 해놓은 소시지를 꺼내 들었다. 10월 31일, 할로윈 피크 타임의 시작이었다.
해가 산등성이를 넘어가자 손님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코스튬을 입은 아무로처럼 몇몇 손님들은 제각기 코스튬을 입고 가게에 방문하기도 했다. 조리를 위해 불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아무로는 어깨에 걸쳐두었던 짙은 남색의 망토를 벗어버렸다. 그러자 주방 바로 앞자리에 앉아 있던 꼬마 손님이 탄성을 내질렀다.
"아아! 뱀파이어는 망토 벗으면 안 돼요!"
"어째서?"
"사람들이 뱀파이어라는 걸 못 알아본단 말이야."
"흠... 이거론 부족할까?"
아무로는 주변을 둘러보는 척 두리번거리다가 아이를 향해 씩 웃어 보이며 날카롭고 뾰족한 가짜 송곳니를 가리켰다. 입안에서 거슬리는 만큼 꽤 실감 나는 분장이었던 덕에 아이는 함께 웃으며 고개를 신나게 끄덕거렸다. 망토를 벗고 있어도 된다는 뜻이었다. 망토를 벗고 습관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려다가 왁스를 발랐단 사실을 깨닫고 소매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 훔쳐냈다.
"아무로 씨, 지금 들어온 주문은 다 나갔으니까 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세요."
"감사해요. 금방 들어올게요."
아즈사의 제안을 기껍게 수락하며 아무로는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피부를 파고드는 공기는 시원하다 못해 서늘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온도였다. 출입문 바로 옆 골목에 슬쩍 기대어 거리를 꾸민 조명 장식을 눈에 담았다. 오렌지 빛깔 조명 사이로는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개중에는 할로윈 코스튬을 갖춰 입은 사람들도 보였다. 마녀 모자를 쓴 사람, 온 몸을 파란색 페인트로 칠한 사람, 실감 나는 상처 분장을 한 사람, 긴 로브를 걸친 사람.
'어?'
아무로는 한 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검은색 로브를 걸치고 아무로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모자를 깊이 눌러써서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그 사람의 목적지가 아무로란 것은 확실했다. 자신보다 반 뼘은 더 큰 키에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걸음걸이. 아무로가 확신을 채 가지기도 전에 로브를 걸친 남자는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안녕~"
"하기-!"
"아무로쨩 오늘 스타일링 꽤 치명적이네."
"얼씨구 이빨 봐라. 뭐로 붙인 거냐?"
"마츠다, 너야말로 깜찍해졌는데."
긴 로브에 가려져 미처 보지 못했던 마츠다가 하기와라의 뒤에서 튀어나오며 후루야의 볼을 꼬집었다. 꼬집힘과 동시에 몸에 익은 반사신경으로 마츠다의 손을 쳐내고는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마츠다 머리 위의 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이 어떤 분장을 했는지도 그새 까먹고 있었는지 마츠다는 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 쥐며 악! 하고 소리 질렀다. 열 손가락의 끝에는 검정색 매니큐어가 가지런히 발라져 있었다. 후루야는 그만 참지 못하고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 여자 가만 안 둬... 수사1과 나온 지가 언젠데 왜 나까지 끼워 넣어서는."
사토 형사의 작품이군.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를 건네듯 마츠다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서, 그 꼴을 하고 어디 가는 거야?"
"응? 왔잖아."
"... 포와로?"
"정답~"
후루야는 손으로 제 이마를 감쌌다. 안으로 들어가면 후루야의 친구가 아닌 아무로의 손님이 되니 또 얼마나 저를 놀려댈지 불 보듯 뻔했다. 만석을 핑계로 돌려보내고 싶었지만 때마침 식사를 마친 가족 손님이 가게를 나왔다. 후루야가 마츠다의 어깨를 치며 위로했던 것처럼 이번엔 하기와라가 후루야의 어깨를 툭툭 쳤다.
"맛있게 부탁해 아무로쨩~"
*
홀과 주방을 왔다 갔다 하며 멈춰있을 새가 없는 후루야를 바라보며 두 남자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주로 손님이 없는 시간대에 방문하여 집요하게 알바생을 놀려 먹을 수 있던 평소와는 달랐다. 후루야는 지친 기색을 미소 뒤에 감쪽같이 숨겨 보았지만 표정을 유심히 보지 않아도 하기와라와 마츠다는 이미 눈치챈 상태였다.
"쟤도 참 대단하다. 어제오늘 저 쪽 비상 걸렸다 하지 않았었냐?"
"점심시간 전에 다 처리하고 퇴근했다더라."
"괴물 같은 놈... 반장도 온다 그랬는데 언제 오려나."
"수1 회식 장소가 여기였어?"
"아무리 반장이어도 개빡친 제로는 감당 못해. 중간에 혼자만 슬쩍 빠질 거래."
"아하~ 반장도 오는 거면, 모로후시쨩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쵸?"
소란스러운 틈에서도 속삭이는 목소리로 대화하던 하기와라가 돌연 고개를 돌려 옆자리의 혼자 온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미라를 흉내 낸 건지 음료를 마시기 위한 입을 제외하고는 얼굴까지 붕대로 온 몸을 꼭꼭 감고 있는 사람이었다. 해가 다 지고 조명도 어두운 실내에서 선글라스도 낀 채였다.
"컨셉에 아주 진심이시네~"
"선글라스 고르는 안목도 탁월하시고."
마츠다까지 합세하여 한 마디 거들자 미라 분장을 한 남자는 큭큭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보았다. 물론 손가락도 붕대로 꼼꼼히 감싸져 있었다. 우리 좀 잘 통할 것 같은데 합석 할래요? 하기와라의 너스레에 이번에는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동그라미를 그렸다.
후루야는 자연스럽게 자리를 합치는 세 남자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붕대를 두른 남자는 하기와라와 마츠다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게로 들어왔다. 손님이 한 번에 몰렸던 때라 후루야는 바로 눈치채지 못했었다. 주문을 받기 위해 가까이 다가가서야 미묘하게 피어오르는 기시감을 느꼈다. 한껏 정성 들인 분장이 대단하다는 핑계로 악수를 요청했고 맞잡은 손으로 비로소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히로 너마저...'
순순히 손을 내어주고 적당한 악력으로 꽉 쥐었다 놓아주는 것이 꽤 얄미웠다. 저 셋이 모였다는 것은 아마 남은 한 명도 곧 온다는 뜻이겠지. 후루야는 일찌감치 체념하기를 선택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그 손님은 거대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포와로에 입장했다.
"여기 아무로 씨의 혈액팩 하나!!"
우렁찬 주문과 함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거구의 남자 덕에 가게 안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한정 메뉴판을 보기도 전에 저런 주문을 내뱉은 걸 보니 공범은 필히 이 안에 있었다. 바쁜 와중에 기어코 놀려먹을 거리를 찾아낸 이들은 후루야와 눈이 마주치자 하나같이 꾸러기 같은 표정을 지었다.
"여 반장!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반장이라니 진페이쨩, 누가 봐도 프랑켄슈타인이잖아!"
마츠다의 뻔뻔한 대사를 시작으로 두 번째 합석이 이루어졌다. 그들을 애써 등진 후루야의 뒤로 프랑켄슈타인과 미라 인간이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잠입수사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해야겠어. 참, 히로는 이미 하고 있지. 이상한 연기에 도가 튼 친구들을 방치해두고 밀린 설거지를 해치우고 있으면 어느덧 마감 시간이 한 시간 앞으로 훌쩍 다가와 있었다.
오전에 출근했었던 아즈사가 먼저 퇴근하고 아무로는 얼마 남지 않은 손님들 사이에서 정리를 시작했다. 맛있게 잘 먹었어요. 즐거운 할로윈 보내세요. 손님들의 다정한 인사와 함께 자리가 하나둘 비워지고 가게 안의 소란스러움도 점차 잦아들어 몇 남지 않은 손님들의 대화소리가 더 선명히 들려왔다.
"벌써 8시 반이네. 곧 마감이지?"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데~"
"우리 애가 삼촌들 보고 싶다고 했는데, 나탈리한테 허락 받아볼까."
"가자!"
"와이프한테 전화 좀,"
"꼬맹이 줄 선물이라도 사갈까? 이 시간에 케잌 먹여도 돼?"
"아니, 나탈리 허락 받아야 된다고."
쟤네 내일 출근 안 할 건가. 후루야는 물소리에 섞여 들리는 친구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속으로 잔소리를 해댔다. 유흥의 마지막 코스가 누군가의 집이 되면 그 다음 날은 꼭 숙취에 시달리던 이들이었다. 나탈리의 허락을 받았는지 하기와라의 환호성이 들렸다. 이윽고 그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아직 술을 마시지도 않았으면서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마냥 들뜬 목소리로 포와로의 알바생에게 인사를 했다.
"아무로 씨 그럼 나중에, 가 아니라,"
"다음에 봐~"
"네. 또 봐요."
아직 끝나지 않은 할로윈의 밤에 후루야에게 은밀한 초대장이 건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