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극(夢中劇)
written by. 상한캔디바
마늘이 후루야의 미간에 명중했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크기의 마늘이었다. 마늘은 미간에 세게 부딪히더니 힘없이 그의 발밑으로 떨어졌다. 후루야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마늘, 향이 강하네. 마늘 특유의 매운 향이 지독하게 코끝을 진동해댔다. 후루야는 마늘을 던진 눈앞의 소년을 바라봤다. 기모노를 입은 소년은, 얼굴에 살이 많아 앳돼 보였고, 그중에서도 죽 째진 눈이 유독 살에 파묻혀 무척이나 조그맣게 보였는데, 그 모습이 소년을 표독스럽고 욕심이 많아 보이게 했다. 기껏해야 중학생이나 됐을까. 후루야는 너무나 어린 소년을 보고는 싱긋, 미소 지었다. 떨어진 마늘을 줍고 소년에게로 팔을 뻗어 마늘을 건넸다. 소년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는 뒷걸음질 쳤다.
“더러운 흡혈귀 자식이.”
소년이 소리쳤다. 흡혈귀? 후루야가 반문하려는데 입을 열기도 전, 후루야의 뒤쪽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소년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 사람이 일으킨 바람에 후루야의 머리가 흩날렸다. 흩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쓰러지는 소년과 인상을 구긴 곱슬머리의 남자. 아니, 남자라기보단 또 다른 소년에 가까웠는데, 중요한 건 그의 나이대가 아니라 얼굴이었는데 저 뺀질뺀질하게 생긴 얼굴 하며, 무엇보다 저 사람 패는 자세가 꼭…….
“진페 쨩―. 적당히 해, 적당히.”
그때 후루야의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나저나, 후루야 네가 웬일로 가만히 있냐.”
분명 이젠 들을 수 없을 터인
“그러게. 제로도 이제 철든 거 아냐?”
죽은 친구들의 목소리가.
후루야는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학창 시절에 우리 다섯 명이 함께였다면 어땠을까. 누군가 날 놀리면 마츠다가 나보다 먼저 주먹을 날리고, 반장이 큰 소리로 화내고, 하기와라가 실실 웃으며 구경하고, 히로가 날 달래는 것이다. 그럼 난 화낼 틈도 없이, 하하, 웃어버리고 마는 거야. 후루야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무렵, 정확히는 그들의 기일이 가까워질 무렵, 종종 그런 상상을 안줏거리로 삼고 실없이 웃곤 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그런 상상을 그만뒀다. 그야, 생각하면 더 보고 싶어졌으니까.
“이 자식, 시대가 어느 땐데 흡혈귀 차별이야, 후루야. 너도 가만히 있지만 말고 뭐라고 해 봐. 내가 특별히 네가 때릴 건 남겨뒀걸랑.”
후루야의 기억보다 훨씬 앳된 얼굴의 마츠다. 마츠다 진페이는 특이한 차림을 하고 후루야의 앞에 나타났다. 아니, 마츠다뿐 아니라 히로, 다테, 하기와라. 그들 전부 특이한 차림이었고, 지금 깨달았는데 후루야 자신도 우스꽝스러운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마츠다는 머리 위에 뾰족한 귀가 달려 있었고, 히로미츠는 머리와 상체를 붕대로 감고 있었다. 다테는 이마에 관자놀이 부근에 나사가 꽂혀 있는 데다 얼굴 곳곳에 수술 봉합 자국이 가득했다. 하기와라는 이상한 로브를 두르고 있었는데, 더 눈에 띄는 것은 로브를 뚫고 나온 뿔이었다. 너희 왜 그런 꼴을 한 거야. 물을 틈도 없이 후루야는 마츠다에게로 달려갔다.
“그래, 그래야 너답, 우왓, 너 뭐야. 떨어져! 야, 이 징그러운 자식아, 떨어지라고!”
마츠다는 자신을 안은 후루야를 밀어냈지만 그럴수록 후루야는 팔에 힘을 주었다.
“뭐야, 후루야 쨩이랑 진페 쨩. 언제 그렇게 친해졌대. 이거 질투 나는걸―. 안 그래?”
“그걸 왜 날 보면서 말해. 나보다는, 제로를 좋아하는 반장이 더 질투 나지 않을까?”
“거참. 오해라니까 그러네. 너네 자꾸 그러면 나 화낸다?”
후루야는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 이거 꿈이구나.’
눈을 감았다. 소리치는 마츠다의 목소리가 귓가에 왱왱댔다.
‘나오라고 할 땐 지지리도 안 나오더니.’
기념으로 사진이나 찍자는 하기와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잊으려고 하니까 나오냐.’
보기 좋다며 웃는 히로미츠의 목소리도 들려 온다.
‘치사한 자식들. 이러면 잊고 싶어도…….’
슬슬 정리하자는 익숙한 다테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앳된 목소리가.
“그래, 제로. 우리 이러다 리허설 늦겠다.”
“리허설?”
후루야가 물었다.
“너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냐? 주인공이 연극을 까먹으면 어쩌자는 거냐.”
“맞아. 후루야 쨩이 주인공 되겠다고 엄청 열심히 했잖아.”
“내가?”
후루야가 마츠다에게서 떨어지며 눈을 두어 번 끔뻑였다.
“너 어디 아파? 흡혈귀가 주인공 하면 관객이 도망간다고 한 애들이랑 대판 싸웠던 게 기억이 안 난다고? 그때 내가 마츠다랑 너 말리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확실히, 반장이 아녔으면 그 애들 사멸해버렸을지도.”
“흥. 그럴만했으니까 팬 거지. 안 그래?”
마츠다가 후루야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어서 가자, 제로. 주인공이 늦으면 안 되지.”
“그래! 널 무시한 녀석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러 가자고.”
히로미츠가 후루야의 손을 잡고 이끌었고. 옆에선 마츠다가 어깨동무한 채로 후루야를 잡아끌었다. 그래, 너희가 있다면 어딘들 어떻겠어. 후루야는 웃었다. 오랜만에 웃었고, 또 오랜만에 취했다. 떠들썩한 분위기에 심장이 빨리 뛰었다. 평소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걸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장르를 따지면 하이틴 청춘 영화. BGM은 친구들의 웃음소리. 주인공은 우리 다섯 명. 영화의 결말은, 그 어떤 영화보다 진부하고 꽉 막힌 해피 엔딩일 것이다. 소년들은 성장했고, 훌륭한 어른이 될 것이다. 너무너무 훌륭한 어른이…….
***
“그러니까, 나를 무시하는 녀석들에게 복수하고 싶어서 마녀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모험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너희 네 명을 만나 동료로 삼게 되는데, 동료의 희생으로 나는 겨우 소원을 이뤄주는 마녀를 만났지만 나는 인간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진정한 친구를 갖고 싶었던 거였고, 마녀에게 너희를 살려달라는 소원을 비는 내용이라고?”
후루야가 대본을 훑으며 말했다. 마츠다는 장난스럽게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래. 우리 다섯이 밤까지 세면서 쓴 대본이잖냐.”
“그렇게 흥분한 제로는 오랜만이었어.”
“맞아. 뭐랬더라.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타인의 힘을 빌릴 생각을 할 시간에 직접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라, 라고 했나? 뭐, 본인의 경험담이 들어가 있으니까 몰입할 만도 하지.”
“그러니까 생생한 연기 기대할게, 후루야 쨩.”
후루야는 머리를 긁적이며 흡혈귀의 대사를 중얼거렸다.
흡혈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마녀님,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저는 단지 절 핍 박한 이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면 제 기분이 풀리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 이) 아니었습니다. 전 단지 외로울 뿐이었습니다. 이제야 저 자신을 사랑해 주는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저를, 저를 위해……. (고개 를 들어 마녀와 눈을 마주치며) 제가 죽어도 좋습니다. 부디 제 친구들과 다 시 만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후루야가 대사를 마치자 이어지는 마녀의 대사를 히로미츠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었다.
마녀 (부드러운 어조로) 그래, 너는 이 모험에서 많은 걸 얻고, 또 많은 걸 잃었구 나. 많이 지쳐 보여. 그러나 또다시 혼자로구나. 널 지탱해줄 무언가가 없지. 너도 이제 알았을 거야. 영원히 혼자인 사람은 없단다. 기다리면 언젠가 네 편이 또 나타날 거야. 그게 한 달이 될지, 일 년이 될지, 십 년이 될지는 나 조차도 알 수 없어. 흡혈귀야. 너는 아직 어려. 흡혈종은 수명의 매우 길지. 그에 비하면 늑대인간, 미라, 크리처의 수명은 매우 짧아. 악마의 수명은 길 다면 길다고 할 수 있지만, 악마라는 족속들은 으레, 무모한 짓을 하다가 단 명하곤 하지. (사이)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간 헤어지게 돼 있단다. 얘야, 그때마다 무너지는 것은 네 손해야.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그렇다면 다른 친구를 사귀려무나. 네가 이곳에 오면서 깨달은 것으로, 더 넓은 세상을 만 나려무나. 내겐 보인단다, 아가. 너는 훌륭한 어른이 될 거야. 세상을 구할 영웅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사이) 이곳까지 온 이상 나는 네 소원을 들어 줄 거야. 그건 약속하마. (5초간 아무 말 없이 흡혈귀를 바라보다가 이내 목 소리를 키우며) 장차 위대해질 젊은 흡혈귀여.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정말 부드럽고, 또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를 달래는 목소리 같기도, 고요한 밤을 꾸미는 새소리 같기도 했다. 무척 긴 대사를, 히로미츠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또박또박, 한치의 군더더기 없이, 낮은 목소리로 읊었다. 옆에서 마츠다가 제법이라며 히로미츠를 칭찬했고 그에 하기와라와 다테가 맞장구를 쳤다. 히로미츠는 후루야를 보고 싱긋, 웃고는 입 모양으로 ‘다음은 네 대사야’라고 말했다.
후루야가 입을 열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존경하는 마녀님. 그가 말했다. 그리고 후루야는 익숙한 방에서 눈을 떴다. 상체만 침대에 눕힌 체였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 스마트폰이 강하게 진동했고 미처 갈아입지 못한 정장에서 나는 땀 냄새와 바닥에서 나뒹구는 캔이 뿜는 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후루야는 몸을 일으켰다. 커튼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아직 어두웠다. 베란다로 가서 커튼을 젖히고 유리문을 열었다. 빛 한 점 보이지 않는 새카만 밤하늘이 후루야를 반겼다. 후루야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만나고 싶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났으나 그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만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것입니다. 그들을 만나는 것은, 그 후면 충분합니다.”
후루야는 눈을 감았다. 부드러운 늦가을의 바람이 그의 금발을 어루만졌다. 무척이나 애틋한 손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