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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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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감으로 도포된 퇴근길은 나쁘지 않았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떨어지며 하루 동안 남긴 열기의 흔적들을 서서히 거두어들이고 있었기 때문에 오후 내내 뛰어다니느라 팔뚝까지 걷어두었던 셔츠 소매를 도로 풀어 내리고 재킷에 팔을 꿰었다. 지난주 수리를 마친 RX-7의 좌석에 몸을 기울이자 익숙한 가죽 시트의 안락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피로감이 상쇄되는 한숨이 절로 내뱉어졌다. 긴장을 놓치면 그대로 눈이 감겨버릴 것 같았다. 기껏 누린 짧은 여유, 조금 더 늑장을 부려도 좋겠건만 천성이 성실한 사람은 곧장 키를 홈에 집어넣고 돌리며 늘어지려 하는 자세를 바로 잡았다. 천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자동차가 부드럽게 시동했다. 액셀을 밟기 전 왼팔을 뻗어 라디오의 다이얼을 돌렸다. 늦은 퇴근길을 위로하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마침 좋아하는 노래였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여섯 번째로 붉은 신호에 걸렸을 때, 재킷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기어를 만지작거리며 휴대전화를 꺼내어 화면을 확인했다.[히로].버튼을 눌러 전화가 연결된 휴대전화 너머는 고요했고 기계의 작동음만이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때마침 바뀐 신호에 휴대전화를 조수석에 내려놓고 귀에 꽂은 이어폰을 손끝으로 두들겨 작동시켰다. 귓가로 바짝 옮겨온 고요 속에서 잠시 시간이 지난 뒤 발신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제로, 나야. 오고 있어?]응. 길이 순탄치가 않네. 거의 다 왔어.[다들 기다리고 있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와.]걱정 어린 목소리를 끝으로 짧은 통화가 끝났다. 방금의 대화를 되새기며 액셀을 천천히 밟자 자동차가 다시 한번 속력을 높였다. 옆으로 지나가는 바깥 풍경의 움직임은 빨라졌다 느려지길 반복하며 덩어리의 형태가 계속해서 바뀌었고, 열린 창문을 타고 들이닥친 바람은 차 내부를 유영하였기에 일몰에만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서늘함을 만끽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었다. 늦지 않게 출발했다고 자신한 것이 무색하게 생각보다 빠르게 도착해버린 친구들과 반대로 그의 자동차는 다시 한번 정지 신호와 맞닥뜨리며 브레이크가 걸려버렸다. 이런. 시계 한 번, 붉은 신호 한 번, 그리고 다시 시계를 바라보기를 반복하던 그는 핸들에 팔을 올려 엎드리듯이 기대어 신호기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야속하게도 그와 친구의 만남을 방해라도 하려는 듯 붉은 신호는 끝내 바뀌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결국 기계와의 눈씨름을 포기하고 고개를 돌리려던 그의 눈에 문득 신호기 너머로 펼쳐진 별이 촘촘히 박힌 검푸른 하늘이 들어왔다. 잊지 못 할 밤하늘은 그를 어둠이 내린 도시 상공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흩날리는 머리칼. 시선 끝에 걸린 붉은색. 두근거리는 가슴과 무심히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고요하고 평화로운 밤이군. 답지 않은 기대인지 긴장인지로 쿵쿵대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려와 귓가를 간지럽혔다.

 

 

  운이 좋게도 이후로는 별다른 문제 없이 곧장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만일 그가 여덟번째 신호와 맞닥뜨려 또다시 시간이 지체되었다면, 어쩌면 사람들은 도심의 해 질 녘을 시속 120km로 질주하는 차량과 마주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다행히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짧은 진동이 불규칙하게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알림을 누르자 정돈되지 않은 느낌의 메일이 여럿 눈에 띄었다.[어디냐?] [도착해서 들어오려면 입장료를 지불해줘야겠어. 맥주 좀 사와줘.] [맛술. 생강. 오크라. 이건 히로나리 리스트. 에다마메 사오면 삶아준대.] [빨리 와~ (*´∀`)♪] [방금은 하기.]눈으로 대강 훑어 내용을 확인 하고 피식 웃으며 핸들을 꺾었다. 장보기는 분명 마츠다의 역할이었을 텐데 또 몇 개나 빠트린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모자란 재료는 모로후시가 사러 나서려 했을 테고 미안해진 마츠다는 어차피 가는 길인 그에게 뒤처리를 떠넘길 속셈이었을 터다. 뭐, 하루만 눈 감아 주도록 할까. 끊임없이 소리가 흘러나오는 라디오에서는 경쾌한 팝송의 리듬이 진동했다. 손가락으로 핸들을 톡톡 치며 진동에 맞추어 리듬을 타고서 바람을 맞았다.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

 

 

  ……너무 많이 샀나?

  뒷자리를 가득 채우는 커다란 종이봉투 여럿을 룸미러로 힐끔 쳐다봤다. 성인 장정 다섯의 위 용량을 과소평가 했다가 결국 부족한 배를 통통 두들기며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후식 거리를 사러 간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진작부터 과할 정도로 사는 것이 습관이 된 모양인지라, 정신 차려보면 늘 이 모양이었다. 그가 들어 나르기에 부담스러운 무게는 아니었지만 손의 개수가 짐의 개수보다 적다는 신체적 한계는 어쩔 수가 없었다. 팔이 두 개쯤 더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는 동안 주차장에 세워진 그의 차를 알아본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서둘러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며 반가운 얼굴을 맞았다. 반장! 지하에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는 반색이 담겨있었다.

  "여기 나도 있어~"

  "같이 왔어? 난 한 명만 불렀는데."

  "오랜만에 만나는 귀하신 얼굴 제일 먼저 보려고 같이 내려왔지."

  "하, 그게 폭처 최연소 에이스 님이 할 말인가?"

  다테의 뒤에서 불쑥 나타난 하기와라가 생긋 웃으며 하는 말에 약간 가슴이 찔려왔다.요즘 통 연락을 못하긴 했지…….그런 변명 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는 사이건만, 그래도 이해를 강요한다는 생각은 늘 없지 않아 가지고 있었다. 혹시라도 친구들이 알게 된다면 더욱 신경을 쓸 것이 분명한 그 생각을 감추기 위해 곧장 맞받아 친 말에 세 명 모두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분위기를 자연스레 넘긴 그는 멋쩍게 볼을 긁고는 슬쩍 다테가 있는 곳을 돌아봤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 짐이 너무 많아서. 얼마 만이냐는 안부 인사보다도 먼저 용건을 들이민 그가 머쓱한 얼굴로 차 뒷자리를 가리키자 다테는 별것도 아니라는 듯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오느라 수고했다. 다들 위에서 기다리고 있어! 굳은살 박힌 두꺼운 손으로 등을 팡팡 내리친 후 어서 가자며 짐을 나눠 들고 앞장서는 다테의 뒷모습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듬직한 '반장'의 것이었다. 그것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언제 적 반장이냐며 분명 한소리 할 텐데.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깃들었다. 그것은 남을 향해 생글거리는 웃음이나 차가운 조소가 아닌, 어느 과거로부터 기인한 봄바람에 실려 온 것. 머리칼을 흩트리고 뺨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타고 날아온 꽃잎들이 이리저리 휘날리며 달빛이 어깨 위로 내려앉은 밤. 주먹을 맞대던 손을 맞잡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불우했던 과거를 딛고 밟아온 길 끝에서 만난 찬란하기 그지없는 봄. 꽃이 만개한 나무 아래 나란히 마주 선 어깨는 무엇보다도 강하게 서로를 지지해주었다. 철벽의 방패. 적을 향해 겨눈 무기. 그들을 둘러싼 단단한 성벽을 지켜주는 포탄. 그것들이 있는 한 그들을 위협하는 역경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제 가는 길을 잊은 어리석고 치기 어린 자만 끝에 있는 것은 기대를 양분 삼아 몸집을 키운 채 아가리를 벌리고 스스로 몸을 던질 이를 기다리고 있는 거대한 절망 뿐이라는 걸 모르는 채.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도 그곳에 너희와 함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렇게 영원을 입에 담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잠기운이 무겁게 짓눌러 겨우 가늘게 뜬 눈으로 보이는 어둑한 하늘은 아침인지 저녁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AM 05:57.어두운 실내에 비해 지나치게 밝은 휴대전화의 빛에 또 한 번 눈을 깜빡 감았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키고 둘러본 주변은 처참했다. 다들 스스로 잠이 들었다는 자각이 있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전장의 시체들처럼 앉은 자리 그대로 널브러진 모습들에 미간을 짚고 고개를 저었다. 그가 도착한 지 겨우 7시간이 되기에 딱 10분 덜 미치는 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마 이 광경이 완성된 시간은 그보다 훨씬 더 짧았을 것이라 예상만 할 따름이다. 마츠다가 지각한 벌이라며 잔이 비어있을 틈새를 주지 않은 덕에 그가 새로 사 온 맥주를 그대로 전부 본인 위에 집어넣게 만든 것도 모자라 한 눈에 모두 담기도 힘들 정도의 주종을 세팅해놓은 것을 보고서 마츠다가 작정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이미 모두가 술기운에 전진과 후진조차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생각만으로도 도로 속이 쓰려온다.

 

  "괘씸하지만⋯ 밥은 먹여야겠지."

  잠에 들기 전 습관적으로 벗어젖힌 반팔 티셔츠-집 주인인 마츠다에게 빌려 입었다-를 발치에서 주워 입고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든 모로후시를 편하게 눕혀준 뒤 어두운 방의 벽을 더듬어 부엌으로 향했다. 아직도 속에서 올라오는 알코올을 냉수로 누르며 제집인 양 냉장고와 찬장을 뒤적였다. 이 녀석. 이런 냉장고 상태로 잘도 밥을 해 먹고 다니는군.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볼까."

  통통통. 나무 도마와 칼이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가 벽에 울린다. 그의 손을 거친 채소는 음식의 풍미를 더해주는 향신료가 되고 보글보글 열기가 오르는 냄비 속에서 어우러진 재료들의 향이 문을 두드려 공간을 넘나든다. 마치 학창 시절에나 누릴 수 있었던 주말 아침 같은 향수 속에서 거실과 방의 인기척이 하나둘 생겨나는 것이 느껴질 때 쯤, 전야 무모하게 들이 부은 20대 후반들의 쓰린 속을 달래줄 아침 반상이 완성되었다. 좋은 아침⋯. 잘 잤어? 응⋯ 제로는 아침부터 부지런하네⋯. 등 뒤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아침 인사에 잠기운이 묻어났다.

  "다들 일어났어? 음식 거의 다 됐는데."

  물음과 동시에 집을 돌아봤다. 조금 전 그가 덮어주고 나온 담요까지 예쁘게 정리해놓은 모로후시는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이미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었고, 방 안에는 어느새 일어나 침대 옆에서 몸을 풀고 있는 다테가 눈에 들어왔다.나머지 한 명은⋯⋯.

  "자고 있군."

  "어제 제일 늦게까지 마시더라고⋯."

  "아직도 자기가 20살인 줄 아는 모양이지."

  "하하. 그러게 말이야."

  "반장! 그 녀석 좀 깨워줘."

  "라저."

  "좋아. 다들 아침 먹을 준비는 된 것 같네."

  "그럼 어디⋯ 맛 좀 볼까?"

  어디보자. 모로후시가 살짝 고개를 숙이고 간을 보고 있을 때, 뒤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팔이 각각 두 사람의 어깨를 감싸며 그들 틈으로 불쑥 얼굴이 나타났다. 여! 두사람 아침부터 사이 좋은데? 반장도 한 입 먹어 볼래? 안 돼, 안 돼. 다 차리고 먹어. 아하하하! 다테까지 합류한 부엌은 취기에 허우적대던 새벽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시끌벅적한 활기를 띠었다. 그는 갓 만들어진 음식에서 둥실둥실 떠오르는 온기를 직접 제 손으로 가져다 놓으며 모두의 아침을 맞이했다.

 

 

 

  "축제?"

  "어제 봤잖아.맞은편 건물 너머로 불꽃놀이 하는 거."

  "나는 본 기억이 없는데."

  "제로는 오자마자 물보다 술을 먼저 마시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래⋯ 누구 씨 때문에 말이야."

  "하? 지각한 사람이 잘못이지."

  "심부름까지 시켜놓고서는 겨우 10분 늦은 걸로 술을 궤짝으로 먹이는 건 어느 나라 주도인지 모르겠군."

  "모로후시, 이것도 먹어."

  "응. 고마워 반장."

  대화가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예사 있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언쟁 아닌 언쟁이 생기는 일도 흔히 있었다. 모로후시와 다테는 그들의 대화에 크게 개의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릴 때처럼 진심으로 드잡이질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둘의 사이가 좋다는 방증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축제, 보러 갈래?"

  "으음⋯."

  "괜찮지 않아? 이렇게 다 같이 모일 기회도 흔치 않고."

  "다들 시간은 괜찮은 거야?"

  "뭐⋯ 여기서 더 바쁜 건 우리보다는 너희 아니겠냐."

  "아하하하⋯."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결국 마츠다의 답지 않은 제안은 모로후시의 머쓱한 웃음 속에 담긴 겸연쩍음을 모두가 느낌으로써 은연중에 받아들여졌다.

  "여긴 이런 축제가 많은가 봐."

  "그런 편이지."

  밝은 태양 아래, 그보다 더 밝고 일상적인 분위기를 가득 풍기는 축제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걷는 걸음마다 밟혀왔다. 즐비한 음식들과 24시간 불이 환하게 켜진 곳들은 언제나 그들을 반긴다며 손짓하는 듯이 보였다. 그가 겹쳐 입은 옷 너머로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기도 여러 번, 지나다니며 보이는 온기 가득해 보이는 부스들은 그들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기에 충분했다. 속이 묵직하며 동시에 간질거렸다. ⋯들뜬 건가?그는 작게 실소했다.

  "부스 자체는 대체로 비슷하네. 음식들이나 분위기가⋯."

  "들러볼까?"

  "방금 점심 먹고 나왔잖아."

  "넣으면 자리는 생기니까 걱정 말고 따라와."

  "나 참⋯."

  오늘따라 마츠다가 유독 의욕적이었다. 선글라스 아래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나 감추려 해도 충분히 그려지는 모습이었다. 이 축제에 의미라도 있는 건지. 말은 그렇게 해도 다들 그의 뒤를 순순히 따라주었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기 마련이다. 현실이 누구에게도 예측 불가라는 점을 간과한다면 말이다. 가령 마츠다의 주도로 축제 부스에 막 첫발을 딛기 직전, 그리고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놀이의 시작을 지금 막 마주했을 때, 길가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발견하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아이는 말도 없이 거리 구석에 홀로 숨죽인 채, 매우 서럽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은 경찰로서, 그 이전에 어른으로서 그런 상황을 두고 볼 인물들은 결단코 아니었다. 왁자지껄한 축제 소리를 뚫고 그 작은 소리를 들은 것은 거의 동시였다. 앞장서 걷던 마츠다만이 소리에 깨닫지 못한 채 나아가려던 것을 모두가 붙잡아 온 것이다. ⋯어떡하지? 달래줘야지. 괜히 말 걸었다가 더 울면 어떡해⋯. 그래도 방법이 없잖아. 울고 있는 어린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거구의 성인 남성 4명뿐인 일행이라면 더더욱. 아이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몰래 숨어 소곤소곤 작전을 짜던 그들은 두 가지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래도 역시 반장이나 히로가 가는 편이 낫지 않아?"

  "하지만 우리는⋯."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해서 수염 난 아저씨들 보고 더 울지나 않으면 다행일 텐데."

  "차라리 제로나 마츠다가 웃으면서 달래주면 그치지 않을까? 두 사람 다 잘생겨서 아이들이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하?"

  "⋯⋯."

  "⋯⋯."

  "⋯저 인상으로는 역시 무리."

  "⋯그렇지?"

  울고 있는 아이에게 첫인상부터 허들 높은 사람들이 가느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지고 올 사람들이 가느냐의 문제였다. 어쩜 이렇게 중간이 없을까 우린. 자신들이 범상치 않은 그룹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럴 때일 수록 새삼 와닿았다. 그때, 한참이나 토론하는 것을 말없이 가만히 지켜보던 마츠다가 불쑥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일단 가보자."

  "그래도⋯."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죽도 밥도 안 돼. 더 상처받을지 말지는 부딪혀봐야 아는 거지."

  그리고 마츠다는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곧장 몸을 돌려 성큼 걸어 나갔다. 아이는 불꽃놀이의 강렬한 빛을 그대로 받으며 그림자 속에서 숨죽인 채 웅크리고 있었다. 마츠다가 아이의 앞에 섰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아이는 여전히 세상을 잃은 듯 눈물을 뚝뚝 흘렸다. 축제가 한창인 거리는 소란스러웠다. 마츠다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자세를 낮추고 앉았다. 뭐해? ⋯⋯.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 말해 봐. 혼자서 앓고 있으면 아무도 몰라주잖아. ⋯⋯. 아이는 미동이 없었고 마츠다는 계속해서 말을 건넸다. 상냥한 목소리도, 웃는 얼굴도 아니었다. 진전이 생길 것 같지 않자 뒤에서는 역시 다 같이 가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으나, 다테가 이를 저지했다. 마츠다를 믿어보자. 진중한 목소리에 담긴 믿음을 느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그런 것이었다.

  흐음.

  "너, 저 소리가 싫어?"

  "⋯⋯."

  마츠다는 손놀림만큼이나 남들보다 뛰어난 눈썰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이가 계속해서 떨리는 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찰나였다. 머리 위에서는 여전히 축포가 터지고 있다. 마츠다가 지체없이 자신이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아이의 머리 위로 덮자, 재킷이 아이의 몸통 아래로 흘러내렸다. 마츠다는 그 위로 손을 올렸다. 애처롭게 귀를 막고 있는 조그마한 손과 마츠다의 손이 재킷을 사이에 두고 맞닿았다. 이제 안 들리지? 푹 숙인 고개에 맞추어 마츠다도 고개를 한껏 낮추어 아이에게만 들리도록 속삭였다. 불꽃놀이의 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떨리는 작은 손에 온기를 포갠다. 그 온기를 느낀 것인지, 아이는 드디어 고개를 들고 마츠다를 바라봤다. 새카만 눈은 여전히 눈물 가득했지만 울음소리는 세상이 떠나갈 듯했던 조금 전에 비하면 점차 작아지고 있었다. 아이의 시선이 마츠다를 향했다. 이건⋯ 나를 보는 게 아니네. 잔뜩 부르튼 얼굴을 한 작은 눈은 마츠다를 향했으나 시선 끝은 다른 곳을 향했다.

  "이게 신기해?"

  "⋯⋯."

  "멋있지?"

  "⋯⋯."

  마츠다는 계속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었다. 아이의 눈이 마츠다의 손을 따라가며 새카만 선글라스에 비친 자신을 쫓았다. 마츠다가 웃었다. 이건 비밀인데⋯ 너한테만 알려줄까?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쓰고 있으면 세상에 무서운 게 없어져. 아저씨는⋯ 사실 비밀 요원이거든. 진짜를 앞에 두고 무슨 말을⋯. 제로, 쉿! 뒤에서 소곤거리는 말소리를 무시하고 마츠다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이는 어느새 그의 말에 정신을 빼앗겨 있었다. 대신, 이걸 쓰려면 조건이 있어. 마츠다가 검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네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알려주는 거야. 네 입으로 직접. ⋯⋯. 할 수 있겠니? ⋯⋯. 아이는 말이 없었다.

  "⋯⋯."

  "⋯⋯."

  마츠다는 더 이상의 재촉도 설득도 없이 아이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30초. 50초. 1분.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이윽고 다 잠겨 갈라진 작은 목소리가 아이의 입을 타고 새어 나왔다.

  ⋯⋯잃어버렸어요.

  뭘?

  소중한 걸⋯⋯.

  어쩌다가?

  누군가가⋯⋯ 빼앗아 가서⋯⋯.

  그래서 울고 있었던 거니?

  응⋯⋯.

  그랬구나⋯⋯.

  마츠다는 말이 없었다. 다만, 팔을 뻗어 작은 아이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그랬구나⋯⋯. 많이 슬펐겠어. 힘들었지⋯⋯. 중얼거리듯 끊임없이 속삭이며. 울어도 돼. 참지 않아도 돼. 감추지 않아도 괜찮아. 어느새 바닥에 완전히 무릎을 꿇고 앉은 마츠다는 아이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울음을 그쳤다고 생각했던 아이도 다시 서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마츠다의 말에 감응하듯이. 머리 위에서 터지는 폭죽 소리가 점차 사그라든다.

 

 

  남은 시간은 아이와 함께 보냈다.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함께 찾았으나 결국 어디서도 찾아내지 못했다. 아이는 마츠다가 덮어준 재킷 끄트머리를 손에 꼭 쥐고 반대 손으로는 마츠다의 커다랗고 단단한 손을 붙잡았다. 긴 밤이 끝난 자리는 새로이 떠오르는 푸른 여명이 자리했다. 서서히 어둠을 잡아먹는 검푸른 빛을 마주한 마츠다가 아이를 바라봤다. 괜찮겠어? 응. 이제 괜찮아.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질문에 아이가 대답했다. 마츠다는 다시 한번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있지, 네가 찾는 건 아마 앞으로도 발견하지 못할 거야. 그건 이미 네 손을 떠났거든."

  "응."

  "하지만 분명 괜찮을 거야. 너는 이미 다른 걸 가지고 있잖아?"

  "다른 거⋯⋯?"

  "자신을 돌아보는 용기. 아까처럼 말이지."

  마츠다가 말과 함께 검지 손가락을 세워 아이의 가슴을 가리켰다. 콕. 간지럽히듯 가볍게 건들인 손가락을 바라본 아이는 이내 마츠다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잠시 눈을 돌릴 수는 있어도 무섭다고 영영 눈을 감아서는 안 돼. 그건 결국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할 테니까."

  해결하는 것, 설령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겨내는 것. 그건 오로지 너 자신만이 해낼 수 있어.

  너무 늦어지더라도, 언젠가의 그날은 반드시 올 거야. 믿음이 있는 한은.

 

  그것은 누굴 향한 말이었을까.

  가을바람이 서늘하게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이도 그것을 느꼈는지 여린 뺨이 잘게 떨렸다. 아니, 어쩌면 무언가를 참으려는 것 같기도 했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아이는 끝없이 무언가를 속삭였다. 마츠다가 저걸 다 들어주고 있다니... 의외인데. 그러게 말이야. 두 사람 사이의 애물단지라도 된 듯이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세 사람의 대화가 들릴 법도 한데, 마츠다 역시 아이와의 대화에 심취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드니 사위가 트인 느낌이 들었다. 하늘의 바닥에서 어스름하던 여명은 어느새 지평선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그것을 느낀 건 세 사람만이 아니었다. 마츠다도 어느새 시간이 다 되었음을 직감하고서 헤어짐을 고한다.

  슬슬 가야겠군.

  가는 거야?

  그래, 너무 오래 있었다.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나는⋯⋯ 찾고 싶어. 누가 날 괴롭게 했는지. 내 소중한 걸 가져갔는지.

  찾으면?

  이유를 물어볼 거야.

  ⋯네가 감당하지 못 할 텐데? 어쩌면 그리 원대한 이유가 아닐 수도 있어. 그럼 더욱 허무하고 괴로워 지지는 않을까?

  그럴지도 몰라.

  차라리 괴롭지 않도록 마음속에서 떠나보내 주고 혼자서 남은 시간을 보내는 건? 그것도 상실을 이겨내는 방법의 하나야. 미련은⋯⋯ 네 생각보다 무겁고 끈질길 수도 있어.

 

  마츠다의 말에서 가시가 느껴졌다. 아니⋯ 동요였을까. 조금 전까지의 당당한 태도와 달리 그것은 어쩌면 아이를 반대로 유도하려는 듯 보였다. 언젠가부터 그를 따라다녔을지도 모르는 결핍과 불안정에 휩쓸린 채. 어째서일까.

  어느새 마츠다는 눈앞의 아이만큼이나 작고 여려 보였다.

  결단의 결말을 알고 있는 망설임의 존재감은 거대하다.

  아이가 마츠다의 손을 잡았다.

  마츠다가 아이의 손을

  잡기를 망설인다.

  어쩌면 예견된 상처가 두려웠던 걸까.

  눈앞의 결단의 무게감에 짓눌린 것이었나.

  눈 감은 평안을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목숨과 악의는 우습게도 너무나도 가벼워서⋯⋯

  마츠다의 중얼거림이 끝맺음을 맺지 못했다. 이어질 말이 너무나도 무거운 듯 마지막 음절을 끌었지만 결국 고개를 숙이고 만다.

  모든 걸 잃을지도 몰라.

  모든 걸 잃는다면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괜찮아. 그를 찾기 위해서라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아.

  그래⋯⋯. 분명 넌 그렇게 하겠지. 이제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달려가던 그때의 나처럼. 왜냐하면 너는⋯⋯.

  입속에서 몇 번이나 짓씹던 마츠다는 이내 말을 삼킨다. 아이는 듣지 않아도 알고 있다는 듯 말갛게 웃는다.

  너는 모든 걸 잃을지 모르지만, 네 주변 사람들은 결국 해내고 말 거야. 네가 믿고 있는 그들이. 늘 그랬듯이⋯

  마지막 중얼거림이 공기 중에서 아스라이 흩어졌다.

  마츠다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 작별이야.

  서늘한 가을바람이 마츠다의 발끝을 스치고 지나 아이의 검고 곱슬거리는 머리칼을 흩트렸다. 마츠다와 나란히 서 그 손을 잡은 아이가 걸친 검은 재킷이 바람에 흔들린다.

  "미련은 무겁지만 가지기 쉽고 해방은 가볍지만 놓아주기 어려운 법이지.“

  아⋯ 저 웃음을 알고 있어.

  몇 해나 지났는지, 이미 길고 긴 시간에 바랜 듯한 저 미소를. 아직 모두가 어렸고, 마치 딱 지금과도 같은 날씨였다. 저 미소에 기어코 안개가 끼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어버린 것은.

  녀석의 가장 중요한 일부가 창공의 재가 되어버린 그 순간은.

 

  그들을 향해 등을 지고 고개만 돌린 채 개구지게 입꼬리를 시원스레 끌어올린 마츠다의 미소에서는 그리운 벚꽃의 향이 났다.

  "너 말이야, 그렇게 한 가지에 맹목적으로 집착만 하며 살다가는 한 방에 가는 수가 있어! 안부는 전해두마!“

  셋 중 누구를 향한 말이었는지, 그가 가리킨 손가락의 방향이 명확하지는 않았다. 다만 떠오르는 태양 아래 고요해진 거리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를 뒤에서 부르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부름에 답하며 돌아서는 중 보인 마츠다의 손에는 검은 재킷 하나만이 들려있다.

  가자, 제로.

  응. 가자.

  한 사람의 인영이 세 명과 등을 맞대고 멀어지는 공백은 매캐한 공기로 뒤덮이고 울렁거리는 심장 고동이 귓가를 장악한다.

 

 

 

  "그러고 보니 제로, 어제 이 근처에 볼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아, 맞아. 조사할 일이 있어서."

  "공안은 바쁘구만."

  "수사 1과 형사님도 만만치 않으실 텐데요. 애인 분과 데이트 할 시간은 있나 모르겠어."

  "윽⋯."

  "아하하. 며칠 전에도 오랜만의 데이트 중에 본청으로 불려갔다고 했었지, 반장?"

  "그래. 늘 나탈리에게 미안할 뿐이네."

  그날의 일을 회상하는지 다테의 눈썹 각도가 평소보다 쳐진 듯 보였다. 그들이 아는 나탈리는 그런 일로 문제 삼을 사람이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런 점이 더욱 죄책감을 가지게 하는 법이므로 그저 등을 토닥여 주는 것 이외에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것은 두사람 중 누구의 잘못도 아닌 단지 외부의 인물로 인한 것이었으나, 누군가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오늘은 날이 좋네."

  "그러게. 오늘 밤은 별이 잘 보이겠어."

  "나 말이야, 어릴 적에 별이 가득한 하늘을 보며 잠드는 게 꿈이었어."

  "히로가? 그건 처음 알았네."

  "제로를 만날 즘에 별을 볼 여유는 없었으니까⋯. 친구가 된 뒤는 밤낮으로 함께 뛰어놀기 바빴고."

  세 사람은 오랜만의 여유를 즐기며 대화를 이어갔다. 스쳐 지나가는 타인의 눈에 그들이 늘 품속에 총을 휴대하고 다니는 사람들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평범하게 거리를 걷는 이름 모를 행인에 불과할 뿐. 하지만 직업의 운명이란 그런 것이었을까. 혹은 숙명인지. 그런 그들이 평범함을 영위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모로후시가 어깨의 악기 케이스를 고쳐매는 것과 멀지 않은 곳에서 귀를 찢는 비명이 울려 퍼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세 명분의 웃음은 위험 경보와도 같은 비명에 즉시 전언으로 갈아 끼워진다. 반장, 히로. 굳이 부를 필요도 없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말보다 먼저 몸이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거닐던 거리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대로변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경찰입니다. 비켜주세요. 다테가 앞장서서 경찰수첩을 꺼내 들고 인파를 뚫었다. 사람들의 중심에는 누군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다테가 부상자의 상태를 살피며 응급처치를 하는 동안 두 사람은 목격자들로부터 증언을 얻어냈다.

 

  "모자를 쓴 사람이 흉기로 찌른 뒤 피해자의 가방을 가지고 달아난 것이 맞습니까?"

  "예에, 우선 신고는 하긴 했는데 거참⋯."

  "잘 하셨어요. 범인이 달아난 방향은 어느 쪽이죠?"

  "이쪽 길을 따라 달려갔어요."

  "히로."

  "응."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들은 그는 나지막이 모로후시를 부르며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쫓자.

  "반장. 뒤를 부탁할게."

  "그래, 그쪽은 너희에게 맡긴다."

  라져. 대답과 동시에 두 사람은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다.

 

  작은 골목들을 살피며 길을 따라 달리다 보니 그들은 어느새 크고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거리 복판에 서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길을 마주하고 잠시 멈춰 선 채 숨을 고르며 모로후시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도망갔군⋯. 오히려 잘 됐어. 눈에 안 띄는 편이 우리가 움직이기 편해."

  "제로, 이 근방 지도야."

  "이곳 지리라면 얼마 전에 다녀가서 기억하고 있어. 그것보다 여기서 어떻게 범인을 찾느냐인데⋯."

  "아는 거라고는 검은 모자를 쓴 남성 체격⋯ 칼에 찔린 형태로 봤을 때 신장 180 센티 이상의 보통 근력인 오른손잡이라는 것 정도일까."

  "목적이 살해는 아니었을 거야. 보통은 정면의 배나 등을 찌르기 마련인데 자상이 팔에 있었으니까. 아마 단순 상해나 소매치기 정도겠지. 계획적 범행인지는 조금 더 알아봐야겠고."

  "소리가 들리고부터 우리가 추적을 시작하기까지 길어봐야 2분에서 3분 정도 걸렸으니 아마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야. 우리보다 빨리 도망갈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아마 이 근처에 있겠지⋯. 각자 흩어져서 찾아볼까?"

  "그러자. 내가 아래에서 살필 테니 히로가 위쪽을 맡아줘."

  "알았어."

  한 두 번 합을 맞춘 솜씨가 아닌 듯 물 흐르듯 분장이 이어지고, 곧이어 각자 방향을 달리 한 채 수색을 시작했다. 가방을 버릴만한 장소 또는 몸을 숨길 수 있을 만한 건물 구석과 골목을 확인하며 돌아다니길 채 5분이 지나지 않았을 때 그의 휴대전화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히로?[놈에게 정체를 들키 ] 빠르게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한 메시지는 뒷부분이 끊어져 있다.

 

 

  새하얘진 세상에는 텍스트만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내 아스라이 사라진다. 숨 쉬는 법을 잊은 듯 호흡이 멎었다. 동공이 거세게 진동하고 심장이 펌프질하는 소리가 귓가에서 무겁게 울린다.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응시했다. 화면이 꺼져 검게 변한 휴대전화의 액정 한가운데에 작은 점이 찍히더니 이내 그것을 중심으로 거미줄이 쳐지기 시작한다. 최초의 점은 점점 그 구역을 넓혀가며 어느새 검고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 냈다. 이건 거미줄이 아니다.히로의,액정에 난 실금이 빠르게 길어지고 이리저리 얽히며 검은 화면에 비친 그의 얼굴을 조각낸다. 아니, 조각 난 건,심장

  중심의 구멍과 가느다란 균열 틈새로 붉은 액체가 솟아났다. 여러 방울이 모여 줄기가 되고 그것은 순식간에 넘쳐흐를 정도로 쏟아져 나오게 되었다. 손바닥을 옷에 문질렀다. 묻어나는 것은 없다. 손바닥은 온통 붉다.

 

  시야가 한 번 점멸하자 일순 전구가 나가듯 사위가 어두워졌다. 지금은, 밤인가?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같았다. 어쩌면 착각일지도 모른다. 니트의 촉감이 까슬하게 닿아온다. 앞에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서 있고 누군가는 앉아있다. 다시 한번 점멸하자, 이번에는 청각이 자극당하기 시작한다. 내용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무언가 소리치고 있었다. 호흡이 점차 가팔라진다. 의식하기 시작한 들숨과 날숨이 정점에 다다르기 직전.

  ー ー ー !

  전신을 뒤흔든 굉음에 번뜩 눈을 떴다. 밤하늘도, 두 인영도, 말소리도 사라진 곳의 그는 달리고 있는 중임을 그제야 깨닫는다.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머리카락을 헤집는다. 의식이 영문 모를 곳들을 유영하는 동안 그의 우수한 신체는 메시지를 보낸 모로후시가 있는 곳의 계단을 달려 올라가는 중이었다. 발을 구를 때마다 계단이 비명을 지른다. 그 소리에 영문 모를 구역질이 인다. 당장이라도 그 걸음을 멈추고 싶었으나 다리가 뇌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끝이 나지 않는 계단을 계속해서 달렸다.

  무언가에 잠식이라도 된 듯 머릿속과 시야가 자꾸만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애써 의식하지 않은 채 달렸다. 30초. 2분. 10분. 50분. 아니 어쩌면 한 시간은 내달렸을지도 모른다. 계단을 오르면 계단이 보인다. 이틀 정도를 오른 걸지도 모르고, 어쩌면 찰나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을 모르게 되었을 때쯤에서야 거대한 건물의 옥상 철문 앞에 도달했다. 눈동자는 수없이 흔들리고 그 몸은 수순처럼 옥상으로 향한다.

  " !!“

 

  옥상으로 들이닥친 그를 반기는 건 서 있는 한 사람과 쓰러져있는 남자였다. 불어오는 바람에는 비릿한 냄새가 뒤섞였다. 내쉰 숨에 흩날리는 입김 너머 풍경은 흐릿하고 무엇 하나 분명하지 않았다. 그가 한 걸음을 내딛자 찰박, 발치가 이질적이다. 비릿한 냄새의 근원은 콘크리트 바닥을 타고 흐르는 피의 물줄기였다. 붉은 액체는 신발을 적시고, 끈질기고 집요하게 다리를 타고 올랐다. 축축하고, 끈적하다. 텁텁한 입 안에서는 쇠 맛이 났다. 터벅. 터벅. 그를 향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둔탁하게 들린다. 걸음마다 검붉은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쓰러져있는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다. 쿵 쿵 쿵 쿵. 맥박 소리가 해일처럼 귀를 덮쳤다. 땀이 마른 목덜미는 열을 빼앗겨 서늘하게 닭살이 올라 있었다.

 

  "왔어?"

  서 있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며 옥상 문을 열고 들어온 그를 맞이했다. "제재에 성공했어." 제재. "스스로를 해치려 들길래." 스스로를. "유령처럼 도망을 다녀서." "유령과도 같은. "이런, 피가 튀었네." 피.

  "응, 잘했어." 기시감이 들었다.

  "히로." 그러나 눈을 돌리고 대답했다.

  자꾸만 쓰러진 남자에게 시선이 돌아가려는 것을 애써 참고 고개를 들었다. 찰박.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찰박. 우선 돌아갈까? 찰박. 찰박. 같이 가자. 발아래 붉은 액체는 발목께를 간질였다. 아랑곳하지 않고 걸어갔다. 히로. 손을 내밀었다.

 

 

  히로?

  불과 두어걸음 너머에 있던 모로후시는 옥상 바닥을 가득 채운 핏물에 발목이 잡힌 듯 미동이 없었다. 삐쭉 올라간 눈매에도 그의 웃음은 언제나처럼 따스했다. 급히 손을 뻗자 모로후시의 손목이 저항 없이 붙잡혀왔다. 정오가 지난 태양과도 같은 미소와 달리 피부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잡은 손을 움찔, 미세하게 떨었으나 손목을 놓지는 않았다. 히로, 춥지 않아? 어서 돌아가자. 땅에 붙어버린 줄 알았던 모로후시의 발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에도 피 웅덩이는 파동을 일으키지 않았다. 물의 신 포세이돈처럼, 마치 그것의 주인인 듯 보였다. 사람 크기만 한 한기가 그를 감싸 안았다. 눈매가 파들파들 떨리는 것이 생생했다. 울컥,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한겨울의 공기가 차갑다.

  "제로. 너는 추위가 두려워?"

  "⋯ 아니."

  "그럼?"

  "⋯⋯.“

  추위를 핑계로 떨리는 입술을 다물었다. 모로후시는 살풋 웃으며 눈을 감았다.

  있지. 난 요즘도 부모님을 만나는 꿈을 꿔. 벌써 20년이나 지났는데도 말이야.

  그의 모든 행동을 잊지 않고 눈에 담아두겠다는 듯 눈도 깜빡이지 않은 채 모로후시를 바라보던 그는 모로후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눈을 번뜩 떴다. 문자를 본 순간부터 돌아가기 시작한 그의 수십 수백개의 시뮬레이션 속에서도 본 적 없는, 상황에 맞지 않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거니와 더불어 대략 그들이 교복을 입게 되었을 때 쯤부터는 암묵적으로 누구도 말을 꺼낸 적 없는 화제였기 때문이다.

  질문이 입가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나 그것을 내뱉는 것보다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들려오는 것이 더 빨랐다. 내가 아직도 많이 어린가봐. 그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걸지도 몰라.

  아니야, 히로. 넌 그날을 멋지게 이겨냈어.

  여전히 말은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어떠한 힘이 그가 말을 하는 것을 허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말을 하지 않으면 이겨낸 걸까?

  ...

  울지 않게 되면 이제 괜찮아진 걸까?

  ...

  온기가 있으면 겨울이 지난 걸까?

  ...

  제로. 어둠이 무섭니?

 

 

  질문이 온몸을 짓누르며 무겁게 다가온다. 들숨이 조금 버거워졌다. 모로후시가 손을 뻗어 그와 손을 맞잡았다.너만이 존재하는 곳에 감히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을까⋯. 모로후시의 말과 함께 툭, 조명이 꺼진 듯 불과 한 치 앞의 분간만이 가능해진 새카만 무대 위에서 독백과도 같이 입이 천천히 열렸다.

  내가 돌아갈 수 있다면 무언가 달라질까?

  그의 말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하다고 느껴지는 실현 불가능한 망상 같은 말에도 모로후시는 막 걸음마를 뗀 아이를 보는 듯이 기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겨내야만 했어.

  정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어.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체온이 다른 두 피부가 닿아 있다면 응당 찬 곳으로 온기가 옮겨가는 것이 마땅한 법칙이었으나, 그들 사이에서는 자연의 원리원칙조차 다가서지 못하는 듯 뜨거운 것은 더욱 뜨겁게, 찬 것은 더욱 차게 되어갔다. 느껴지는 한기에 느리게 손을 움직이자 모로후시는 순순히 힘을 풀어주었다. 추운 게 싫니, 제로? 두 번째 질문은 무게감은 덜었으나 악의 없는 무딘 날처럼 따끔하게 파고들었다. 입술을 달싹였다. 여전히 정제되지 못한 단어들이 떠돌았다.

 

  으음- 대답이 지연되어 중단된 대화에 정적이 무겁게 가라앉아 바닥의 수면과 맞닿아 가려 할 때 쯤 모로후시의 목소리가 다시 공기를 끌어올렸다. 제로.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뭔지 알고 있어?아니. 두려움을 극복하는 거야. 나는 지금 두려운 것이 없어. 이미 모든 걸 겪었는데. 두렵다는 건 나를 덮쳐오는 감정이지 행위가 아니야 제로. 감정은 행동에서도, 상황에서도, 혹은 네 스스로의 내면으로부터도 나올 수 있어. 너도 알고 있지 않아?

 

  울컥 차오르는 속이 답답했다. 핏물이라도 토해내서 비워내고 싶었지만 무엇을 뱉어내야 할 지 알 길이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도 늘 영민하고 우수했던 그의 망설임은 너무나도 낯선 것이었다.

 

  미숙한 사람은 자신의 미숙함을 견디지 못해 그것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많아. 손에 쥐기에는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절망감이 너무나도 커버려서⋯. 또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애초에 그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두려울지도 모를 미래를 차단해 버리는 거야.

 

  모로후시는 굳이 말하자면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하는 쪽이라고 하는 편이 옳은 사람이었다. 그것은 행동일 때도 있었고, 상냥함이 느껴지는 언어일 때도 있었다. 힐난보다는 배려를 행하고, 동정보다는 포용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었기에 모로후시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새로이 이해하기에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대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마도 모로후시도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를 바라보는 직선적인 눈은 그에게 요하는 것이 있었다.

 

  '제로는 어떻게 생각해?'

  '제로의 두려움은 어떤 것이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도록 해.‘

  오랜 기간 아는 사이라는 것은 그토록 상냥하면서도 잔인하던가. 눈을 돌리고자 해도 그보다 먼저 의중을 알아챈다는 것은 어쩌면 어떤 때에는 원치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를 향한 모로후시의 다정은 그를 향한 비수를 담고 있었다. 선함을 형상화하여 빚은 듯한 눈은 그의 속을 꿰뚫고 숨통을 조여온다. 너도 눈을 돌리지 말고 직시하라는 소리를 담고서.

 

  "우리 어릴 때, 제로가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를 흘렸던 적이 있었는데 기억 나?"

   날 리가 없다. 어린 시절 넘어져서 피를 흘린 경험이 없는 어린 아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묻혀 지나간 기억들 속에 흘러간 수많은 일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때 제로는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일어났었어."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일로는 울지 않을 만큼 꿋꿋하게 자라온 유년기였다.

  "아팠을 텐데. 아무 말도 없이."

  말해서 좋을 것이 무엇이 있었겠어. 자신의 약함을 증명하는 꼴밖에 더 되었을까.

  "누구나 넘어져 본 일이야 있었을 테지만 제로는 그중에서도 늘 강해 보였지."

  약한 사람이 되기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해도 아픈 건 그대로인데도."

  강하다는 건, 아프지 않다는 것이었나?

  모로후시의 눈이 말한다. 입이 말하고, 그의 손이 말했다. 넘어졌던 어린 그를 잡아주었던 그 손이 말한다.

  너는 많이 아팠느냐고.

  상처투성이의 작은 손이 모로후시의 품을 끌어당겼다. 작은 힘에 순응하여 따라간 모로후시가 어린 제로를 품에 안는다. 겨울이 싫어? 세 번째 질문에는 드디어 돌아오는 대답이 있다.

 

  혼자 있는 것은⋯ 추워.

  그리고?

  봄이 그리워.

  지금은 외롭니?

 

  차가운 손이 어린 뺨을 감싸자 여린 살이 움찔, 떨리지만 대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고민하듯 벌어지고 닫히기를 반복하던 입이 열렸다.히로에게서는 봄의 향기가 나.

 

  겨우 봄 뿐일까. 여름이 되면 단 둘이 몰래 나서던 바다낚시의 짠 내음이, 낙엽지는 시원섭섭한 하늘을 올려다보던 시월 공기의 향수가, 나란히 입까지 올려묶은 서늘하게 포근한 간질거리는 니트 목도리의 감촉이,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분홍빛 축포 깔린 거리를 걷던 걸음이 모두 너였건만.

  설령 찬 계절의 악몽이 나를 죄어 온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를 덮지는 못 할 것이었다.

  그러니 돌아가자. 봄의 시작으로.

  앞서 말한 것과 다를 바 없는 말을 했다는 자각은 없었다.

 

  모로후시는 7살의 손으로 그를 잡아주었고 수염이 듬성하게 난 입으로 말했다. 제로, 너도 알고 있잖아.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경찰 정복을 입은 청년이 보였다.

 

  아니, 모르겠어.

 

  "곧 해가 뜨겠네⋯.“

 

  그 말에 어둠에 잠긴 옥상에서 난간 너머를 돌아보자 별을 담은 군청색 장막이 흩날리는 것이 느껴졌다.

  밤은 사람을 혼망한 세계로 이끌고 정신을 하리게 하는 것임에도 떠날 때는 또 어째 이리 아쉬운지. 다가올 새로운 날보다 시간 선의 뒤로 떠나가는 낡은 세계에 연연하게 되는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이 밤을 놓친다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이 뇌리에 남는다.

  두려움은 잠시겠으나, 후회는 영영이겠지.

  기회는 언제나 열려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놓치고 말았다. 그것을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닫기란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 될 것이다. 언제나 과거를 살고 미래에 내딛기에 생명은 무지하고도 덧없는 것이리라. 한 길 앞 낭떠러지도 보지 못하는 감은 눈으로 영원을 외치는 것은 몽애한 일이다. 머리는 과거에 있으나 몸은 나아가는 시간 속에서 과거의 후회를 곱씹을 바에는 과거와 미래 사이 그 좁은 현재를 살아가는 지금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 고되지만 가분하지 않겠는가. 한숨에 들이마실 두려움에 그 모든 미래를 잃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너는 그대로지만, 나는 걸어가야만 하니까. 그러니까.

 

  "아무래도 나는 겨울은 좋아할 수 없을 거 같아. ⋯적어도 당분간은."

  "제로, 사실 벚꽃 좋아하지?"

  "⋯⋯벚꽃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

  푸핫,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겨울 없는 봄이 어디 있을까⋯⋯.

  "추위가 있기에 비로소 따스함을 알 수 있는 법이니.“

  어린 모로후시가 그와 꼭 닮은 노란빛 장갑을 쥐여준다. 교복입은 모로후시가 제 키만큼 기다란 목도리를 둘러주고, 정장을 입은 남성은 셔츠만 남은 자신은 아랑곳 않고 재킷을 벗어 건네준다. 뼈를 깎는 추위 속에서 장갑과 목도리와 재킷을 든 그는 더 이상 불어오는 바람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하늘의 장막은 서서히 옅어지고 푸른색과 하얀색이 뒤섞인 애매모호한 색을 띄게 되었다. 빛줄기가 어렴풋이 다가오며 옥상 난간을 등진 모로후시의 얼굴이 천천히 그림자로 뒤덮였다. 이목구비가 흐릿해지고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보였으나 입 모양이 멀어져 간다.

  영겁같은 칠흑 속에서 헤매는 것에 겁먹고 나아가는 걸 포기하지 마. 그 두려움과 추위는 언젠간 맞을 빛의 양식이 될 테니까. 눈앞이 짙은 어둠일 수록 네가 맞이하는 빛은 더욱 눈부실 거야.

  별에게 작별을 고한다.

 

 

  가장 어두운 새벽이 지나면 우주에서 가장 밝은 빛이 너의 세상을 비추어 줄 테지.

  그 순간까지 너를 잃지 않는다면.

 

  "너라면 분명 할 수 있어."

  제로.

 

 

 

  동이 트는 것과 함께 스러지는 마지막 입 모양을 뒤로 했다. 여전히 발치는 끈적하고 축축했으나 더 이상 그것들이 나아가는 발목을 붙잡지는 않았다.

  그것은 나의 의지일까, 너의 의도였을까.

  등 뒤에서 옥상의 철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당분간 그 문이 열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의지이고, 너의 바람이었을 테니까.

 

  바닷 바람이 시원하면서 텁텁하게 느껴졌다. 저 멀리서 작당모의 하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우악스러운 손길이 달려들었다. 놓으라고 소리치는 목소리는 짓궂은 웃음소리에 묻혀 파도에 쓸려가기 바빴다. 결국 물에 흠뻑 젖은 채 화가 난 표정으로 자신을 내던진 이들에게 달려들자, 모래사장이 움푹움푹 파일 정도로 도망을 다녔다. 기어코 한 명을 붙잡아 바닷물에 똑같이 집어넣고 나서야 직성이 풀렸는지 해변에 털썩 지친 몸을 뉘었다. 입가에서 짠 맛이 느껴지고 태양이 뜨거웠다. 내년에도 올까? 너희들이랑은 절대 안 와. 제로 쨩 너무해~ 물에 또 담가버리기 전에 저리 가시지. 어, 반장!

 

  "반장."

  "또 그렇게 부르네. 우리가 나이가 이제 몇이냐."

  이제는 킬킬대며 대꾸하기에도 머쓱한 나이였다. 고등학생도 대학생도 아닌 나이에 반장이 뭐냐며 뒷머리를 긁었다. 네가 너무 듬직한 탓이야. 화살을 돌리자 황당하게 쳐다보는 표정이 마치 '반장'이 제 역할을 하던 시절의 얼굴과도 같았다. 그 얼굴을 보고 시답잖은 웃음을 지었다. 푸핫- 크게 숨을 터트리며 고개를 치켜들자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머리 위에 있었다. 등 뒤로 짚은 손에는 오돌토돌한 거친 감촉이 손가락을 따라 손바닥까지 그대로 느껴졌다. 약간은 축축하고 군데군데는 이끼가 자라나 미끈거리기도 하다.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네."

  "그렇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한 번씩 정신을 씻어줄 필요가 있어."

  "그렇다고 등산을 할 줄은 몰랐는데, 너 그런 취미가 있었던가?"

  "강력반에 와 봐. 온통 체력이 넘쳐나는 사람들 뿐이라 쉬는 날에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다테가 미간을 짚으며 곤란하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해놓고서는 곧 농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가 듣기에도 틀린 말은 아닌 듯했다. 경찰학교에 다니던 시절 체력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던 다테가 겨우 말단 취급인 조직을 만만하게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경시청 강력계라면 특히 경찰 인력 중에서도 에이스들이 모인 곳이니 더욱이 그렇겠지. 사뭇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으로 받아들이라고 한 말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지⋯⋯."

  "넌 강력계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이제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도 그리 흔치 않아졌기에 유독 들뜨는 시간이었다. 어쩌다 별거 아닌 몇 마디 귀해진 시기가 되었을까. 후회는 없어도 미련은 남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너 짐이 무겁지 않냐?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럭저럭 괜찮아.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가지고 온 것들이라서."

  "하하, 너도 산행은 초심자라 잘 모르는구나.“

  다테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다테가 손을 들어 산의 정상을 가리켰다. 얼마나 높은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길이었다.

  "산을 오를 때도 그렇고, 먼 길을 가게 되면 결국 언젠가는 짐을 두고 떠나야 할 때가 있어. 모든 걸 끌어안고 가겠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지. 그 선택의 순간에 네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잘 생각해야 할 거야.“

  일단 모두 가지고 있으면 좋을 줄 알았다.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고, 없는 것 보다는 가진 것이 마음이 편하니까. 그러나 언젠가는 두고 가야 할 때가 온다고 했다. 많은 것을 지고 있으면 그만큼 나아가기에 힘들어지니까.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

  "네 선택이지."

  "같이 생각해보자."

  "제로, 나는 네 모든 길을 함께 해줄 수 없어.“

 

  너도 이제는 알잖아?

  정면으로 바라보고 말을 하는 다테의 눈은 언제나 올곧았다. 그 눈앞에서 거짓을 고하기란 잔인할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과거에도, 지금, 이 순간도.

  걸터 앉아있던 산 중턱의 바위가 뒤집히고 나무들이 하늘을 날았다. 아니, 추락하는 것은 내 쪽이었다.

  허공에 손을 뻗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발을 딛고 내달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여기라며 부르는 손짓들을 따라가자 교정이 보였다. 축제인지 무엇인지 모를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벚꽃이 만개한 교정기를 몸에 두르고 발을 놀렸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웃음 가득한 얼굴은 태양보다 빛나고 있었다.

 

 

 

  ⋯⋯ 야

 

 

 

  밤에 몰래 기숙사에서 빠져나와 옥상에 드러누워 보니 별이 드문드문 보였다. 역시 도쿄 하늘은 어둡구나. 누군가 아쉬운 기색을 보이자 차가운 캔이 얼굴에 닿았다. 맥주?! 쉿. 몰래 가져온 거야. 걸리면 난 모르는 척 할 거야. 우우 매정하다!! 들키겠어 조용히 말해!

  다테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개구쟁이 같은 이들은 이번 한 번만 못 본 척 해주겠다는 말을 기어코 받아낸다. 역시 반장이 최고야! 이럴 때만? 아차, 들켰네! 윙크해도 다음은 없어. 넵!

  단호하게 말한 다테가 저벅저벅 걸어간 길은 풀이 잔뜩 난 바위 계단이었다. 제로, 조심해서 와. 바위가 미끄러우니까. 알겠어. 먼저 가고 있으면 따라갈게.

  으악-!

  털썩. 조심하겠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위 끝에 말이 미끌리는 바람에 나무 기둥을 붙잡아 넘어지는 꼴을 겨우 면했다. 괜찮아? 응, 큰일 날 뻔했어. 조심하는 게 좋아. 혼자 갈 때는 잡아 줄 사람도 없으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자.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발치를 내려다 본다.

  다테가 올려다본 하늘색은 어렴풋하다.

   "나도 더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거. 너도 이제 알고 있잖아."

  그 말은 얼핏 단호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 내용은 어린아이 다루듯 어루어 달래고 있다.

  "제로, 오늘 산행은 어땠어?"

  "생각보다 힘드네."

  "그렇지? 원래 그래. 앞에 어떤 길이 펼쳐져 있을지도 모르고, 끝도 보이지 않고."

  "이정표가 있어도 전혀 모르겠어."

  "그럼 결국 나아 가보는 방법밖에는 없을 거야. 이 길이 맞든, 아니든."

  "그게 잘못된 길이었으면 어떻게 해? 정상으로 가는 길이 아닐 수도 있잖아. 돌아오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써버렸는 걸.“

  오르는 것만도 험난한 길이었건만, 그것이 실제로 잘못된 길이었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절망적인 상황이 또 있을까. 원래 있던 위치로 돌아가서 다시 다른 길을 찾아 나설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두려워졌다. 그러나 다테는 돌아가야 할 길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숲의 나무를 보고 있다. 하늘을 보고, 땅에 자란 풀을 본다. 그쪽으로 함께 시선을 돌렸다. 바위 틈새에 작은 싹이 돋아나 있고, 그 옆의 나무 그늘에 이름 모를 들꽃이 자라있다.

  "정상을 밟는 것만이 산을 오르는 목적일까?"

  "그러려고 온 것 아니야?"

  "오는 길에 피어있던 꽃들을 혹시 봤어?"

  "아니, 전혀."

  "새가 우는 소리는?"

  "글쎄."

  "작은 샘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

  "우리가 중간중간 잠시 쉬어갈 때, 너는 한가득 가지고 온 짐을 내려놓고 살피기 바빴잖아. 그때마다 내가 본 것들이야.“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하긴, 다테는 눈썰미가 좋았지.

  "내가 눈이 좋거나, 귀가 밝아서 그런 게 아니야. 쉬어갈 때에 쉬는 법을 알아서지."

  "나도 쉬었는데?"

  "몸 뿐만이 아니야. 중요한 건 여유를 가지는 것.“

 

  너, 우리가 오를 길을 제외하면 하나도 본 것이 없잖아?

  찔러오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산을 오를 때 중요한 건 산을 오르는 그 자체이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가 아니야. 가는 길에 보이는 꽃이 예쁘고, 바람이 시원하고, 매점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히 기뻐하면 돼."

  "⋯⋯."

  "목마른 짐승이 있다면 가방에서 물을 나누어 주면 되고, 지나가는 객이 있다면 간식을 함께 먹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짐을 줄여나가고, 길을 걷고, 땀을 흘리는 거야."

  "목적지만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

  "맞아.“

 

  어깨를 토닥이는 거친 손이 너무나도 커다랗게 느껴졌다. 내가 작아진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았다.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다.

 

  제로.

 

 

 

  ⋯루야 ⋯⋯

 

 

 

  언제나처럼 진중한 목소리는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아직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아랑곳않고 말을 한다.

 

 

 

  우리는 너의 지식이자 힘이고, 동력이며 짐이 될 거야. 그것을 언제까지 지고 갈지는 오롯이 너의 선택에 달렸지. 높은 산을 오를 수록 가져가야 할 것은 한정적이고 당장 네 앞에 놓인 것은 언제 평지가 나타날지 모르는 예측 불가한 길 뿐이야.

 

  그렇다면 너는 길을 걷지 않을 것인가?

 

  아니.

 

  정상만을 향해서 갈 것인가?

 

  아니.

 

  그럼 넌 어떻게 할 거지?

 

  글쎄. 일단 있는 길을 걸을 거야.

 

  애매모호한 대답은 그의 취향이 아니었으나 다테가 듣기에는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줄곧 숙이고 있던 고개를 슬쩍 들자 시원스레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잠시 망설이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지금은 정상을 향하지 않고 향하는 법을 모르겠어.

  하지만 지나가는 길에 꽃을 한 번 더 볼 수는 있겠지. 어쩌면 마주 오는 사람과 인사를 나눌 수도 있고. 완만한 길을 택할지도 몰라.

  그걸로 안 될까?

 

 

  하하하!

 

  웃음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눈가가 뜨겁게 달아오르며 따끔거렸으나 손을 들어 문지르지는 않았다. 아직은 할 수 없다.

 

 

  "그걸로 충분해!“

  고개를 완전히 들었다. 시야를 가득 채운 커다란 인영이 어스름한 하늘을 등에 업고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아니, 그건 과연 한 명이 맞았을까?

  인영이 손을 뻗는다.

  열기가 오른 눈가와 얼굴을 찬바람으로 식힌 후,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손을 맞잡았다.

 

 

 

  긴 밤이었지?

  이제 깨어날 시간이야.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어. 나 참, 마지막까지 상냥하시군."

  중얼거린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채 맴돌았다.

  맞잡은 손은 닿은 그 순간 바스러졌다. 잡지 말 걸 그랬나, 잠시 생각했으나 그런 생각을 하게 하려고 녀석들이 온 것이 아니란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후회를 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미련이 되지 않도록. 아아, 이제는 잘 알아.

 

 

 

 

  후루야 씨!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눈시울이 축축한 채로 귀에 들리는 소리에 이끌려 몸을 벌떡 일으키자 물방울이 작게 공기 중으로 튀었다. 혼자 누워있는 방 안에서 그것에 신경을 쓸 사람은 없었다. 단 한 명, 남은 사람은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잠결에도 착실하게 통화 연결을 한 모양이었다. 발신 전화가 깜빡깜빡 켜져 있었다. [카자미]. 후루야의 듬직한 부하였고 믿을 수 있는 동료였으며 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 액정에서 빛났다.

 

  카자미냐?

  그래. 지금 바로 가지.

  괜찮아. 그게 내가 할 일인 걸.

 

  [죄송합니다. 주무셔야 할텐데 깨워서요.]

  "아아, 괜찮아. 잠이라면 충분히 잤어."

  많은 녀석들의 도움이 있었거든.

  뒷말은 삼키고 서둘러 합류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방에서 휴대전화의 불빛만으로 익숙하게 옷걸이에 걸린 정장을 걸쳤다. 어스름히 푸른 달빛과 새하얗게 빛나는 액정만이 방의 일부를 겨우 채웠다. 휴대전화를 향해 손을 뻗는다. 카자미에게 넘겨 받은 자료를 확인하려 휴대전화를 조작하자 숫자 여러 개가 화면 중앙에 뜨는 것이 보인다. 피식. 홀로 남은 방에서 실소를 지었다.

 

  "유치하기는. 그래서 오늘이었던 건가.“

  손가락을 움직여 자료를 스캔하고 재킷에 팔을 끼우며 자동차 열쇠를 챙겨 들었다. 서둘러 구두를 신고 문손잡이를 돌리려다가 잠시 멈칫한다. 젠장, 나도 옮았나 보군.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말기를 몇 차례, 그곳에는 자신 이외에 아무도 없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걸 인지한 후루야는 작게 입을 열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 이외의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녀오겠습니다.“

  쑥쓰러운듯 중얼거리듯 내뱉고는 곧장 달려 나가는 그의 손에서 휴대전화가 답이라도 하듯 화면을 연신 깜빡였다. 호박과 유령으로 가득한 시내 거리를 달리는 후루야만이 모르는 일이었다.

  휴대전화로부터의 답변은.

  그리고 후루야와 10월의 마지막 밤을 함께한 할로윈의 망령이 어쩌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11월 1일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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