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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봄이 있다
written by. 조엑

다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조직의 수뇌부를 붙잡아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전하게 갈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함정이라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서, 즉 확실하게 조직 간부 모두를 체포하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 '무언가'는, 반드시 살아있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각 간부의 위치를 확보하고 동시 체포가 가능하다 판단될 때까지 시간을 끄는 역할. 여러 차례 NOC로 의심 받았던 버본, 후루야 레이가 적합했다.

NOC로 의심 받고 있는 것이 어떻게 작용할 지 알 수 없다는 점이 가장 골치 아팠다. 간부들이 NOC를 색출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침입 가능한 외부 세력을 간과하는 것이 베스트일 것이고, 워스트는… 상황 판단을 마친 간부들이 NOC를 빠르게 사살하고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후루야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조직의 수뇌부에 두 발을 디디고 서 있어야 했다. 끝까지 버본이라는 이름으로 놈들을 속여야 확실하게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테니까.

이럴 때면 후루야 레이는 늘 반장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생각했다.

"아무리 형사라고 해도 목숨은 하나야. 그러니까 언제 그걸 걸어야 할 지 잘 생각해."

반장의 말이 무색하게도, 후루야 레이는 매번 목숨을 걸어왔다. 지나가는 사건 하나가 제 평생을 휘저을 사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검질기고 억척스럽게.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후루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우수한 두뇌를,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누구라도 한 순간에 목숨을 잃고 만다는 것을. "폭처는 뭐, 매일매일이 목숨을 건 분해 쇼쇼쇼지." 하고 우스갯소리로 대답하던 하기와라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리는 것도 같았다.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영영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왜? 불의의 사고였든, 공리를 위한 결단이었든, 부조리한 타살이었든. 왜, 그들이 죽어야만 했는가?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질문을 외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혼자 답을 찾는 것에도 이제 지쳐버려서. 무엇에라도 전력으로 달려들지 않으면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끝없이 늘어선 복도와, 수십 개의 방. 전달 받은 암호를 풀어 도착한 간부 회의 장소. 사상 최대 규모라는 게 거짓은 아닌 모양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도 간간이 있었고, 심지어 가면을 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자체적으로 소지품 검사를 하기 때문에 도청은 꿈도 꿀 수 없다. 즉 후루야 레이는 지금 무장은커녕 아무런 통신 장치도 가지고 있지 않다. 지원이 올 때까지는 철저하게 고립된 상태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본대가 어떤 상황인지 신호조차 받을 수 없으니,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올 때까지 무식하게 시간을 질질 끄는 수밖에 없었다. 머지 않은 것 같지만, 그만큼 이쪽 상황도 좋지 않았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할로겐 조명 아래에서 진이 하얗게 눈을 번뜩였다. 

"쥐새끼가 숨어 있었어."

가구가 적은 탓에 진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느 때보다 소름이 돋을 법한 태도였지만 후루야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쥐는 너야, 독 안에 든 쥐. 속으로 그렇게 뇌까리며 공손한 버본의 말투를 꺼냈다.

"진, 아직도 제가 NOC라고 생각하..."

"내가 쥐새끼를 살려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진은 이제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황이 좋지 않다.

판단한 다음 순간, 진이 빠르게 발을 내딛었다. 눈 깜짝할 시간에 코앞까지 온 진을 밀치려고 했지만, 진은 밀려나는 동시에 거칠게 후루야의 팔을 움켜쥐었다. 팔뚝을 세게 누르고 있는 건 엄지손가락뿐인데도 무지하게 아팠다. 엄청난 악력. 

일부러 당황한 표정을 내비쳐 보였다. 

"저는 NOC가 아니,"

"그렇지 않다면 밖에 초대받지 못한 인간들이 드글대고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할 거지."

왔구나.

"전달 받은 정보를 일부러 유출시킨 적 없습니다."

"어이, 총을 가져와."

"저를 여기서 사살한다면 경찰에게 조직에 관한 단서를 넘겨주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뻔뻔하기도 하지. 배신자에게 결말은 하나다."

후루야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스파이임을 인정하고 덤비느냐, 계속 뻐기느냐. 경찰이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조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순서대로 여길 탈출하기 시작할 텐데 시간을 더 끄는 것이 의미가 있나? 아니, 지금 이 확신은 진 혼자만의 것인가, 아니면 모두의 판단인가? 내가 몇 명까지 상대할 수 있지?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간부 중 한 명이 말을 꺼냈다.

"진, 이 건물에서의 총기 소유는 보스의 명령으로 금지되었습니다."

희소식이다. 총이 없다면 해볼 만하다. 

"그럼 당장 이곳을 뜬다. 이유는 밖을 보면 바보라도 알 수 있겠지. 버본은 결박해서 이송시켜."

그 말을 들은 순간, 사력을 다해 진의 턱을 가격했다. 확신으로 물든 얼굴의 다른 간부들의 접근을 피해 테이블을 딛고 도움닫기를 한다. 유리한 위치를 이용해 연속적으로 유효 타격 지점을 노린다. 

버본 식으로 처리할까, 하는 충동이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스파이임이 들킨 이상 이곳에서 후루야는 경찰이었다. 체포술에서 유효 타격은 턱, 어깨, 몸통, 손목. 

"역시...!"

몇 년 간 몸이 부서져라 고생한 덕에 조직 내에서 버본의 입지는 제법 탄탄했다. 다시 말해, 진도 독단적으로 버본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중요 간부를 전부 한 공간에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지간히 배짱 좋고 두뇌 회전이 빠른 놈이 아니고서야, 상급자의 명령 없이 이 건물을 떠나지 않을 테니. 명령이 전달되지 않게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자식들만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 된다. 방음 처리가 완벽에 가까운 곳일 테니 무슨 수를 써서든 이 자식들만 붙잡아 둔다면...

 이후는 격투였다.

제법 험악한 인상을 가진 이름 모를 조직원이 발길질을 하더니 와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이 부서졌다. 톱밥이 날렸다. 이런 곳에 질 좋은 가구를 들여놓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발길질 한 번에 수명을 다 하는 테이블이라니, 부실해도 너무 부실했다.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운 후루야에게 훨씬 유리하게 작용할 고지대를 없애버리려고 한 건가 싶었는데 테이블 다리를 노린 짓이었다. 그는 테이블 다리(였던 것)을 줍더니 야구 배트처럼 휘둘렀다. 부웅 하고 혼탁한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상당히 위협적이다.

"이크."

가까스로 바닥에 착지하는 동시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합판 비스무리한 소재로 된 테이블이 완전히 두 동강났다. 일대다인 시점에서 이미 특수폭행죄 감이었지만, 흉기까지 손에 쥐었으니 이제 정말로 특수폭행죄를 못 면하겠군.

혼자 속으로 농담을 하며 남은 세 개의 각목 중 하나를 챙겼다.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문 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받아치려는데 머리 위에서 쨍,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가루가 쏟아졌다. 누군가 조명을 산산조각낸 모양이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아 안구를 보호했는데, 그 틈을 타 누군가 우악스럽게 팔을 잡아챈다. 

"악!"

눈이 채 어둠에 적응하기도 전에, 각목이 오금을 강타했다. 저절로 바닥에 무릎이 닿았다. 아픔을 느낄 새 없이 필사적으로 바닥을 기어 문앞으로 향했다. 출입구를 막아야 했다. 

가까스로 문을 등진 채 주저앉은 모양새가 되자 복부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순순히 함께 가줄 것 같지 않으니 정신을 잃게 한 뒤에 데려가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기절할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의식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둔탁한 발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지다가, 일순간 멎었다.

"……."

실눈을 뜨고 앞을 내다보니, 오른손을 들고 있는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체격으로 보아 아까 가면을 쓰고 있던, 그 사람. 손으로 간부들을 제지하는 것을 보아하니 보스 급의 인물이 틀림 없었다.

"포위된 상황이 아니라면 더 놀아줬을 텐데 말이야. 안타깝게 됐군."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며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아주 약간의 빛도 반사해내며 예리하게 빛나는… 단도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양쪽에서 손목을 찍어 누르고 있는 상태였다.

"총기 소지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지, 다른 모든 위험한 물건들을 반입할 수 없는 건 아니라서. 만일을 대비해 한 명 정도는 작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편이지."

그리고 그 한 명은 항상 당신일 테지. 후루야가 속으로 가면 쓴 자를 비웃었다.

그림자가 장갑 낀 손으로 단도의 손잡이를 잡고 능숙하게 각도를 어림했다. 후루야도 그림자가 어디를 노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림자가 다른 쪽 손으로 후루야의 갈비뼈를 가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비뼈 사이를 정확하게 통과시켜, 심장으로.

첨예한 칼 끝이 자켓과 셔츠를 우습게 갈랐다. 조각난 천 사이로 급속의 냉기가 느껴졌다. 그림자는 시간이 아주 많은 것처럼, 꽤 느릿하게, 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지금껏 다양한 부위에 자상을 입어보았으나 가슴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천천히 날붙이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것도 처음이었다. 조금만 더 밀어넣으면 심장에 칼 끝이 닿는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창고에서 진이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었던 것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다.

"…다른 NOC에 관한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아마 카자미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더라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후루야를 쳐다보았을 것이다.

"시간을 끌기 위한 소리입니다."

"맞아. 하지만 정보가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당신들이 영영 얻지 못할."

다른 간부가 재빠르게 후루야의 말에 흔들리지 말 것을 간언했지만 후루야의 눈빛에도 역시 흔들림이 없었다.

"순순히 정보를 내주지는 않을 겁니다. 저를 끌고 가서, 뭐. 회유든 협박이든 고문이든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그러다보면 내가 고통에 못 이겨 정보를 말할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그러려면 지금 여기서 저를 살려두셔야겠죠."

"목숨 구걸을 특이한 방식으로 하는군, 버본."

말한 그대로였다. 회유든 협박이든 고문이든 상관 없었다. 말하지 않을 테니까. 

단지 사람의 성질을 긁거나 어떤 일을 되갚아주는 데 능할 뿐, 후루야 레이가 그런 식으로 비겁한 인간은 아니었다.

"내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건, 너희야."

후루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도발하듯 상체를 움직여 단도를 조금 더 깊이 찔러넣었다. 그림자가 흠칫하는 순간, 방 전체가 일순 밝아졌다. 창문을 통해서 강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누군가 무대 조명의 스위치가 올린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환한 빛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창문이 다이아몬드처럼 쏟아져내렸다. 양 옆으로 커튼이 펄럭이고 있었는데도 할로겐 등이 부서졌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양이었다. 

엉성하게 달아둔 커튼봉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시선 끝에 익숙한 구두가 걸렸다.

"후루야 씨!"

카자미다. 그 사실을 확인한 순간 후루야가 힘 빠진 목소리로 고개를 떨구었다. 

"이름 부르는 거, 조심하래도…"

임무 완료다. 카자미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건, 이미 출입구를 완전히 봉쇄했다는 뜻이다. 조직원 전원의 위치가 확보되었다. 너희들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나 다름 없다. 이 다음은 좀, 다른 사람들한테 맡겨도 되지 않을까.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히로, 넌 알아?

 

 

인생은 온통 한바탕 꿈이라 했다. 이것은 꿈일까, 삶일까. 아득히 흩날리고, 또 쏟아지는 저것이 벚꽃일까, 불꽃일까. 몇 겹의 천 너머로 전해져오는 바닥의 온도는 왜 이리도 현실감이 없을까.

주변이 소란스럽다. 사이렌 소리와,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발소리, 몸싸움을 하는 소리, 종국에는 미란다 원칙을 읊는 수사 1과 경찰의 목소리…. 가만히 눈을 감고 또다시 친구들을 생각한다. 

 

어쩌다 우리는 경찰의 꿈을 꾸고,

어쩌다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일상을 살다가,

어쩌다 모두 목숨을 잃었나. 

 

영영 되풀이되는 질문에 끝이 없다.

 

 

"장난해? 공안이면 다야?! 내 윗 기수들은 왜 다 이 모양인 거야?!!"

"사토 씨, 우선 진정을…"

그 후루야 레이가 설마 이 사람일 줄이야. 절대 만난 적 없다고 발뺌하더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 사토가 씩씩대며 베이커중앙병원 복도를 빠른 속도로 통과했다. 옆에서 다카기가 쩔쩔매며 병실에 들어가서 대체 어쩔 생각인지를 들어보려고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자, 잠시만요. 안에 사람이…"

하지만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은 병실 안의 익숙한 뒷모습에 걸음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호리호리한 체형과 삐죽삐죽한 뒷머리. 틈만 나면 사건을 빼앗아가던 경시청 공안부의 카자미 유야가 틀림 없었다.

 

카자미는 꾹 주먹을 쥔 채 말이 없었다. 처음 보는 눈빛으로 제 상사를 쳐다본다. 

문으로 진입하기 어려울 상황을 고려해 창문을 깼는데, 가까스로 착지한 직후 마주한 광경이, 가슴에 칼이 박힌 채 쓰러져 있는 상사라니. 그것도, 스스로의 목숨으로 상대를 협박하는 상사라니.

모종의 동경을 품고 있던 대상의 모습으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죽으려고 하셨잖아요."

"……."

카자미 앞에서 후루야가 침묵했다. 드문 일이었다.

"조금만 더 깊이 찔렀으면 죽을 수도 있는 위치였어요."

이름 부르는 거 조심하라고 했지, 카자미는 어쩌면 그 말이 후루야의 유언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시때때로 위험한 일을 하지만 좀처럼 목숨이 위태로워지지는 않을 만큼 유능한 사람. 어쩌다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해도 백 가지 대안을 제시해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의 다 포기해버린 얼굴을 보았으니까.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됐다. 뒤에 손님 왔으니까 다음에 얘기해."

"처음 제대로 인사드립니다. 경찰국 경비국 경비기획과 후루야 레이입니다."

한숨을 쉬려는 카자미를 무시한 채 후루야가 입구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다. 떨떠름한 얼굴의 사토가 먼저 인사를 받아줬고, 뒤따라 다카기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수사 1과 사토 미와코입니다."

"다카기 와타루입니다."

"하던 해명을 마저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카자미 씨도 보고라는 걸 해야 할 테니까요. 수사 1과도 이번 사건에 관여하고 있는 만큼 경위를 알 필요가 있고요."

"그냥 조금 더 시간을 끌려고 한 것뿐입니다."

복도에서의 분노가 진정된 것도 잠시, 별 일 아니었다는 후루야의 태도에 사토는 도로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오름을 느꼈다. 이 인간이고 저 인간이고 본인 목숨 귀한 줄 아는 인간이 하나도 없다. 아아, 이래서 마츠다와 친구로 지낼 수 있었던 건가요? 하는 막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네, 목숨을 바쳐서요? 고작 그런 게 공안의 방식인가요?"

"…저는 마츠다와 다릅니다."

 

순식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공교롭게도 후루야와 사토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마츠다가 목숨으로 지킨 병원이었다.

 

"저번 협력 건으로 드린 정보가 있으니 이미 다 눈치 채셨겠죠. 저희 다섯 명에 대해서요."

"……."

"그 녀석은 어땠습니까?"

"……."

"상사니 체계니 하는 것들 전부 발로 걷어차버리고 본인 하고 싶은 수사만 하는 자식이었죠?"

"…네."

원래부터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 소리를 곧잘 듣는 자식이었지만 하기와라가 죽고 나서는 더했다. 몇 년째 퀭한 모습의 마츠다를 만날 때마다, 범인을 잡아서 어쩔 생각이냐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끝내 내뱉지는 못했다. 나머지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얼 걱정하고 있는 건가 싶다가도, 불안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츠다가 혹시. 설마. 진짜로?

"바보 같은 죽음이었어."

후루야가 중얼거렸다.

마츠다는 친구들이 걱정했던 것 그 이상의 선택을 했다. 친구로서 감히 최악의 선택이라고 부를 만했다.

"진작에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아시다시피 사정이 있어서 인사가 늦었습니다."

"……."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뵙게 되어 유감입니다. 쾌유를 빌어요."

대꾸가 없는 사토 대신 다카기가 후루야의 인사를 받으며 적당한 말을 건넸다.  

 

"사건 경위서 작성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카자미 씨의 증언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사토가 그렇게 말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마츠다나 다테 형사가 생각나면 연락 주세요."

지난 일들로만 울고 웃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대답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듣고 싶은 얘기가 많아요. 휴가 동안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셔야 할 겁니다. 우선 어떤 사고를 치고 다니셨길래 교칙이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진 건지 듣고 싶거든요, 선배님."

마지막 세 글자에는 장난스러운 웃음과 함께 꽤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휴가라니요?"

후루야가 전에 없이 멀뚱한 표정으로 묻자 카자미가 건조하게 답했다.

"후루야 씨, 퇴원 후 두 달 간 안식월을 보내게 하는 걸로 결정이 났습니다."

"뭐라고?"

"위에서 결정한 거라 저한테 따지셔도 소용 없어요."

그렇게 후루야는 경찰 인생에서 다시 없을 장기 휴가를 얻었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경찰학교 시절의 포상 외박 이후 처음으로 받은 제대로 된 휴가였다. 정확히 말하면, 사용 가능한 유급 휴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루야가 사용하지 않은 것이니 처음으로 떠안은 강제 휴가였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 첫날에는 친구들의 묘에 다녀왔다. 둘째날에는 오랜만에 오나츠카 교관님을 뵈러 다녀왔는데, 안식월을 보내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자 "쉬어본 적이 있어야 제대로 쉬든가 말든가 하지." 하며 숲에서 지낼 것을 권유하셨다. 잘 아는 사람이 운영하는 단기 임대가 가능한 숙소가 있다면서.

달리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가볍게 짐을 챙겨 집을 떠났다. 

 

인적이 참 드문 숲이었다. 흙과 낙엽으로 이루어진 숲의 바닥은 도시의 아스팔트와는 달랐다. 기척을 숨기기는 어려웠지만 그림자를 숨기기에는 용이했다. 더 이상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데도 관성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안 일이며 버본 일이며 포아로 일을 하다 보면 그 경계를 명확히 그리는 것이 몹시 어려웠다.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 고요한 밤에도 불 켜진 경시청으로 출근하면 늘 낮이었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활기찬 낮에도 어두운 폐건물로 잠입해 버본 일을 해치우면 늘 밤이었다. 적으면 한 시간, 많으면 두 시간씩 주어지는 귀한 취침 시간에 잠을 설치는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숲에는 낮이 있었고 밤이 있었다. 오솔길에는 가로등이 없었고, 굳이 손전등을 켜고 밖으로 나갈 이유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새벽 해가 밝아오면 밖으로 나가고, 해가 지면 통나무 집으로 들어오는 게 생활 패턴이 되었다.

저녁이면 불을 켜둔 채 기타를 연주하거나, 혼자 누워 가만히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최근 계속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 때 말이다.

주먹 만한 심장에, 차가운 단도가 거의 닿을 뻔했을 때.

 

창문으로 쏟아져내리는 빛을 보고 하필 히로미츠를 생각한 것은 왜일까.

어떤 추억이 생각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막연히 히로가 여기에 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카자미는 퇴원을 도와준 이후로 얼굴을 내비치질 않았다. 그 사이 다른 일에 배정되기라도 한 걸까. 함께 고생했는데 혼자만 휴가를 받고 쉬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조금 들었다. 전화를 걸어본 적이 있었는데 "일에서 멀어지라고 휴가를 보내놓은 건데 저한테 또 연락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하며 얼마 대화를 하지도 않은 채 전화를 끊어버리더라. 

그래도 매주 토요일이면 누군가 찾아왔다. 지지난 주에는 병원에서 인사를 나눈 수사 1과의 사토 형사와 다카기 형사가 다녀갔고, 지난 주에는 요란한 산악 바이크와 함께 하기와라의 누나라는 사람이 다녀갔다. 경찰학교 시절에 다테와 수석을 다툰 얘기, 하기와라가 사토 형사의 차를 탐낸 얘기, 마츠다가 그 트렁크에 들어가서 낮잠 자던 얘기… 온갖 얘기를 다 늘어놓았고 온갖 얘기를 다 들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넷이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은 금요일의 해가 지고 있었다.

내일은 어떤 사람이 찾아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에서 나물을 캐 통나무집으로 돌어가려는 찰나였다.

 

"모로후시 다카아키라고 합니다. 히로미츠의 형인데…"

익숙한 듯 낯선 사람이 입구에 서서 후루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같이 밥 한 끼 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주주객반(主酒客飯)이라 했습니다. 주인은 손님에 술을 권하고, 손님은 주인에 밥을 권하며 다정히 먹고 마신다는 뜻이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술을 안 꺼낼 수가 없네요."

모로후시의 말에 후루야가 찻장을 뒤져 술잔을 꺼내왔다. 다행히 반찬과 어울리는 술이 있었다. 

"술을 즐기는 편이지만,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제가 한 반찬부터 맛보시지요."

모로후시의 권유에 후루야가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참기름 향이 듬뿍 나는 나물이었다. 

 

다음 순간, 후루야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히로가 해준 것과 비슷한 맛이 나요."

 

특정 감각의 자극으로 잊고 있던 기억이 되살아날 때가 있다. 

심장이 홍시가 된 것 같았다. 뼈와 살은 죄 물러지고, 온몸에 도는 피까지 묽어져서 내쉬는 숨에도 물기가 가득해지는 것 같았다. 제로, 하는 낯익은 음성이 뺨에 닿는 착각이 들었다.

감정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히로의 얼굴이 떠올랐다. 히로의 웃음소리, 히로의 목소리, 히로의 말투, 히로의 걸음걸이, 히로의 모든 것이 한 순간 몸을 관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깨끗한 바닥 위로 투명한 물이 몇 방울 떨어졌다.

 

"후루야 씨."

"죄송합니다…"

"후루야 씨."

"저 때문에 히로는… "

"…저는 당신이 거문고를 끊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네?"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는 지기지우인 종자기의 죽음을 슬퍼해 본인의 거문고를 끊어버렸다고 하죠. 빛나는 재능을 알아봐줄 사람이 사라지자 더 이상 재능을 펼치려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

"하지만 종자기는, 누구보다 백아가 거문고를 계속 연주하기를 바랐을 겁니다. 백아의 재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사람이 종자기니까요."

"……."

"히로미츠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괘념치 않아요. 다만 저는 당신이 계속 살아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

"히로미츠는 저에게 편지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당신이 히로미츠에게 편지를 쓴다면 분명 기뻐할 거예요."

 

모로후시가 후루야의 술잔을 채웠다.

 

"봄이 오겠네요.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어요."

"…네."

"벚꽃도 곧 피겠지요."

"…네."

동생과 꼭 닮은 눈매로, 모로후시는 후루야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었다. 후루야는 습한 얼굴로 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것밖에 할 수가 없었다.

 

히로에게

 

히로, 요즘 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

히로의 형과 히로의 어린 시절에 대해 얘기했어. 분명 형과 따로 살게 된 다음부터 요리를 했을 텐데, 이상하게 다카아키 씨의 요리에서는 히로의 요리와 비슷한 맛이 나. 그리고 경계선에서 사귄 소꿉친구가 있다면서? 일하면서 몇 번 스친 적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인연이 있는 줄 몰랐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히로 친구라니까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어. 다카아키 씨는 경계선의 아지트에도 다녀왔다더라. 봤어? 나도 한 번 가볼 생각이야. 내가 알지 못하는 추억이지만, 그래도. 의사를 비롯해서 나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기를, 너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너에 대해 많이 얘기해야 한다고 했거든.

마츠다가 수사 1과에 갔을 때 파트너였던 사토 형사한테 들었는데, 마츠다는 틈날 때마다 하기와라한테 문자를 보냈대. 나는 히로의 무엇도 꺼내보지 못했는데.

그래서 어제 카자미 앞에서 몇 년만에 너의 얘기를 꺼냈어. 공안 경찰이었던 너에 대해서. 있잖아, 공안에서 곧 너의 장례식을 열 거야. 본명을 쓰고, 사진도 걸 거야. 늦어져서 미안해. 히로의 장례식을 열겠다고 마음 먹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 적어도 반장에게는 말했어야 했다는 생각. 갑자기 널 만나게 돼서 반장이 얼마나 놀랐을까 싶어. 물론 반장은 강하고 대인배니까, 그런 걸로 나에게 뭐라 하지는 않겠지만... 그냥, 말해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카이 슈이치, 그러니까 네가 알기로는 라이지. 라이는 여전히 마주하기가 많이 껄끄러워. 이제 그에게 잘못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많이 원망하게 돼. 하지만 스카치였던 너를 알고 있는 건 나 말고 그가 유일하니까. 스카치였던 너에 대해서는 그와 얘기할 수밖에 없어. 그래서 시간이 되면 다음에 한 번 찾아가볼까 해.

 

히로, 나는 그동안 줄곧 우리 다섯 명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아. 

하기와라가 왜 그런 사건에 휘말렸지? 마츠다는 왜 그런 선택을 했지? 히로는 왜 나 때문에 그렇게까지 한 거지? 반장은 왜 어이 없는 사고를 당해야 했지? 이 모든 일이 일어났는데도, 왜 나는 살아 있지? 왜 나만 살아 있지?

 

여전히 답을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또 너희를 생각해. 다들 어쨌든 내가 살아가기를 바랄 테지. 매일 삶으로 견인 당하고 있는 것 같아. 

 

오늘은 오랜만에 포아로에 가서 아즈사 씨와 얘기를 나눴어. 이제 아무로 토오루라는 신분은 필요 없는데도 말이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제대로 말하고 왔어. 

그 이름을 잃어도, 내 삶은 이어지겠지.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던 일이 끝났지만, 내 삶은 이어지겠지. 너희 없는 일상이 앞으로도 쭉 이어질 거야.

벚꽃은 매년 다시 피겠지만, 우리의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

 

그래도 한 번 살아보려 해. 이유야 어떻게 붙이든… 매번 이렇게 목숨을 건지고 있으니까. 죽음이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삶이 나에게 주어졌으니까. 

 

그 계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모든 게 덧없다 하더라도.

너희 없는 일상을 다시 한 번 살아보려 해.

 

히로라면 응원해주겠지? 하기와라, 마츠다, 반장한테도 꼭 얘기 전해줘. 고마워.

 

휴가를 보내고 있는 제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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