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비
written by. 유꾸
"네, 성인 다섯 분이요. 결제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걸로 해주세요~."
"이 미친놈아 내 카드 언제 가져갔어."
"아까 진페쨩이 지하철에서 레이쨩이랑 게임에 푹 빠졌을 때? 재밌게 놀게~"
"젠장. 그런 내기하는 게 아니었다고! 네놈 때문에!"
"뭐, 그렇대도 제로 녀석을 이겨보겠다고 불태운 건 너잖냐, 마츠다."
"반장이라도 말렸어야지, 저 괴물을 무슨 수로 이기냐고!."
"아하하. 그래도 점수도 올라갔잖아. 덕분에 다 같이 놀이공원을 다 와보고 말이야. 고마워."
"뭐, 그렇다면야…. 그래. 기왕 온 건데 어디, 폐장할 때까지 즐겨보자고!"
"카드랑 티켓 드릴게요. 트로피컬 랜드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어이, 제로! 지도는 다 외웠냐? 당장 귀신의 집으로 안내해 봐라."
"네네~ 아깝게 2등 하신 마츠다님, 가시죠."
花火
사건의 발단은 경찰학교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앞둔 10월, 하기와라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도 마지막인데 우리 내기할래? 이번 시험에서 2등 한 사람이 트로피컬 랜드 비용 다 내기."
"하아? 내기는 무슨. 그리고 꼴등이면 꼴등이지 애매하게 2등은 뭐냐?"
"꼴등인데 돈까지 나가면 슬플 거 아냐~ 그리고-"
진페짱이 1등 하면, 만년 1등인 후루야가 꼼짝없이 2등이라고?
나머지 셋이야 결과야 어찌 됐든 재미있을 테니 무난히 고개를 끄덕였고, 하기와라가 폭탄보다도 더 잘 다루는 것이 마츠다였으므로 이 내기가 성립되지 못할 가능성은 제로였다. 부동의 1위인 후루야를 제외하고는 매번 오르내리는 순위였으니 사실상 나머지 네 명의 싸움이긴 했지만 어쩄든 경찰학교 개교 이래 최고의 사고뭉치들의 내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저기서 언덕으로 올라가면 귀신의 집이야."
"그게 어떻게 그렇게 바로 외워지냐? 괴물 같은 놈."
얇아진 지갑은 금방 잊고 야무지게 머리띠까지 챙겨 쓴 마츠다와 하기와라의 어깨에 양팔을 걸친 다테가 그들을 이끌고 앞으로 달려나가고, 그 뒤를 히로미츠와 후루야가 여유롭게 따랐다. 매일 붙어지내는데도 할 말은 왜 이리 많은지 지루할 새도 없이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폐 병원처럼 꾸며놓은 공간에 놓인 시체더미를 두고 그의 사망 원인에 대해 토론하던 다섯의 귀에 새된 비명이 들렸다. 산전수전 어쩌면 공중전까지 겪어낸 성인 남성들에게는 그저 알바생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공간이었으나 어린아이들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차마 다가가지는 못하고 머뭇대는 귀신과 겁을 잔뜩 집어먹고는 주저앉아 울먹이는 여자아이. 그 앞에 따라앉아 란, 다 사람이라니까. 귀신같은 건 없다고. 하고 서툴게 달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남자들의 등장에 귀신 분장을 한 직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은 출구까지 저희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남아계신 귀신분들께도 나오지 마시라고 안내 좀 해주세요."
"아, 네! 그럴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애들은-."
"하기네가 갔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은 하기와라가 아이를 달래기 위해 말을 건네보았으나 깊게 파묻힌 고개가 들릴 기미는 없어 보였다. 꿈쩍 않는 여자아이에 옆에 선 남자아이도 어쩔 줄 모르는 티가 났다. 안아들고라도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하기와라의 옆에 마츠다가 불량하게 주저앉더니 대뜸 시비인지 혼잣말인지를 중얼거렸다.
"꼬마 아가씨? 여기 좀 볼까? 이제 귀신이 하나도 없네?"
"…정말요?"
"하, 당연하지. 귀신같은 거 원래 겁쟁이들한테만 보이는 거라고."
"마츠다."
"저 겁쟁이 아니거든요?!"
"거짓말하지 마. 그럼 왜 그러고 있는데 ?"
의외로 통하는 방법이었는지 어르고 달래도 꿈쩍 않던 고개가 씩씩대는 작은 소리와 함께 천천히 들렸다. 아직도 눈꼬리에 물방울을 그렁그렁 달고 있으면서도 잔뜩 힘이 들어간 눈빛과 퉁퉁 부은 볼을 보니 마츠다에게 겁쟁이라는 소리를 들은 게 어지간히도 분한 모양이었다. 과연 동류는 알아본다 이건가.
"저 겁쟁이 아니에요!"
"그래그래. 내가 잘못했다. 그럼 이제 나갈 수도 있겠네."
"..."
컴컴한 문 넘어가 아직 두렵긴 한지 아이의 입이 다시 꾹 다물렸다. 작은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인지 손이 계속해서 꼼질거렸다. 마츠다도 분명히 그 움직임을 알아차렸음에도 꿈쩍 않는 것이 나중에 딸내미 깨나 울리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모양새였다. 오케이. 굿 캅 배드 캅 전략. 배드 캅 마츠다가 아이의 속을 잔뜩 긁어놨으니 이제 굿 캅 하기와라가 나서야 할 시간이었다.
"…있지, 아저씨는 귀신이 무서워서 그런데 나 좀 도와줄래? 손잡고 나가자. 남자친구도 나가야지."
"…네, 제가 도와줄게요! 근데 신이치는 남자친구 아니에요. 제 소꿉친구예요!"
"바보야. 모르는 사람한테 그런 얘기를 뭐 하러 하냐?"
"우와~ 아저씨도 저 아저씨랑 소꿉 친군데 저 아저씨가 말을 좀 못되게 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어이, 하기."
"괜찮아요! 신이치도 맨날 나한테 바보라고 해요. 그래도 하나도 안 나빠요."
"내가 언제 맨날 그랬다고…."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걷다 보니 곧 출구가 보였다. 밖으로 나오니 다테와 히로미츠, 후루야가 직원과 함께 보호자로 보이는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 친구들이랑 곧 나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 얘들아! 여기!"
"와, 벌써 밖이다. 꼬마 아가씨도 이제 괜찮지?"
"네! ...손잡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저씨도 고맙습니다."
"오냐. 앞으로 귀신같은 거 나오면 주먹을 날려버려. 알았지?"
"진페짱..."
"저도, 고맙습니다."
"뭘. 앞으로는 여자친구한테 툴툴대지 말고 잘해줘."
"... 네."
"아이고, 얘들아. 괜찮니? 이거, 재밌게 놀러 왔을 텐데 미안합니다. 내가 심장이 약해서 애들만 보냈더니."
"아닙니다. 어차피 저희도 나오는 길이었는데요."
"맞아요. 딱히 한 일도 없으니까요. 얘들아 안녕, 잘 가!"
"안녕히 계세요!"
*
작은 해프닝이 있었던 귀신의 집을 뒤로하고 지도를 펼친 다섯은 제트코스터로 향했다. 설마 제트코스터에서 별일이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다림이 한 시간에 가까워지자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을 한 마츠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 이거 타자고 한 사람 좋은 말로 할 때 나와라."
"마츠다, 너잖아."
"그러니까. 좀 쑤셔 죽겠네. 야, 하기. 사고라도 쳐봐라."
"내가 사고 치면 진페짱도 사건 조사받아야 할 텐데?"
"그럼 간식거리라도 좀 사 올까? 먹으면서 기다리면 좀 나을 텐데. 나랑 제로가-"
"됐어, 나리. 나갔다가 여기까지 다시 들어오려면 고생 깨나 할 걸?"
"그래. 좀 참아봐. 네 녀석 뒤에 있는 꼬마가 더 의젓해 보인다, 야."
"그럴 리가. 꼬맹아. 너도 심심하지."
맨 뒤에 서있던 마츠다가 앉으니 그제야 허리만큼도 안되는 꼬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귀신의 집에서 만났던 아이들쯤 됐을까. 작지만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이리저리 사내들을 살피던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옷소매를 쥐더니 곧이어 똘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가 잘생긴 어른이 말 걸면 수상한 사람이니까 피하랬어요."
"뭐? 아하하! 우리 아가씨 아버님이 교육을 단단히 시켜두셨구나? 이 아저씨가 잘생겼어?"
마츠다 옆에 따라 앉으며 말을 건 하기와라에 여자아이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마뜩잖았던 남자아이가 무어라 쏘아붙이자 오사카 사투리 덕분인지 금세 둘 사이에 붙이 붙었다. 뒤의 커플이 아이들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기만 하는 걸 보니 아이들의 보호자는 아마 출구 쪽에 있고 아이들만 들어와있는 듯했다. 후루야가 뒤쪽으로 오며 허벅지에 손을 짚고는 허리를 숙여 싸우던 아이들에게 말했다.
"헤지가 바보야!"
"친구끼리 싸우면 안 되지. 그래, 저 아저씨 못생겼다. 그치?"
"어이, 제로."
"아닌데, 잘생겼는데. 근데 오빠는 이름이 제로예요?"
"아니. 이름이 레이거든. 그래서 제로라고 부르는 거야. 나는 히로고."
"히로? 그럼 형은 영웅이에요?"
"맞아. 그러고 싶어서 경찰이 됐어."
"형, 진짜 경찰이에요? 이상하다. 경찰 아저씨들은 다 저 아저씨처럼 생겼던데."
"아하하. 한쵸, 너 경찰처럼 생겼대. 좋겠다, 야?"
"너무하다, 꼬맹아. 우리 다 친구거든."
"에엑, 거짓말이죠?"
순서를 기다리며 뒤 차례의 꼬마들과 떠들며 기다리기를 수십 분. 그제야 제트코스터가 저 멀리에 보일 듯 말 듯 했다. 남자들의 말을 들은 남자아이가 그게 진짜냐며 울타리에 오르려 하자 위험하다며 하기와라가 그를 들어 올렸다. 마찬가지로 궁금해하는 여자아이를 히로미츠가 조심스럽게 안아들자 위에서 다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잠시, 뒤쪽이 소란스럽더니 곧 검은 옷을 입은 커다란 사내 둘이 인파를 헤치며 등장했다.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이미 그치들 때문에 넘어진 사람들도 있는 듯 했다. 아이를 안은 두 사람을 뒤쪽으로 보낸 세 명이 절대 길을 터주지 않겠다는 듯 앞을 막아섰다.
"거기, 앞에 비켜!"
"뭐 급하신 일 있으신가봐요?"
"사회규범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닐텐데요."
"누구는 시간이 남아돌아 한 시간째 서 있는 줄 아나. 얌전히 뒤로 가시지?"
"이렇게 어린 애들도 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른이 그러시면 안되죠."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든가^^"
"뭐? 이 자식들이...!"
"그만. 다른 곳을 찾아보지."
"형님! 하지만...!"
"소란 피우지 마라.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아이들을 더 꼭 감싼 히로미츠와 하기와라까지, 다섯 명이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하자 화가 나는지 소리를 높이려는 남자를 뒤에 서 있던 남자가 제지했다. 다테 못지않게 거대한 남자가 모자 아래에 자리한 벼른 눈으로 다섯 명을 훑고는 이내 뒤돌아 나갔다.
"뭐, 저런 미친ㄴ-. 야! 사람들한테 사과 안 해?"
"마츠다. 그만해. 애들이 보잖아."
"쳇. 이따 눈에 띄기만 해봐라."
후루야가 그들을 따라가려는 마츠다의 어깨를 잡아세웠다.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찬 마츠다가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모습을 응시했다. 보통 사람들과 머리 하나는 차이 날 만큼 눈에 띄는 거구였음에도 금세 인파 속에 몸을 숨긴 남자들의 모습을 곱씹던 마츠다의 등에 콕콕 간지러운 손길이 닿았다.
"형, 방금은 좀 경찰 같았어요."
"뭐야, 이제 형이야?"
*
"잘 가, 얘들아. 이제 싸우지 말고!"
"안 싸워요!"
"너 이 녀석들 또 싸웠어?"
출구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던 남자가 꽤나 험상궂게 생겨 멈칫했으나 아빠가 오사카 경찰인데 도쿄로 출장 오신 김에 자기들까지 데려왔다는 것까지 떠들었던 아이들이 그의 양옆에 서서 손을 잡고는 그를 아빠의 부하라고 소개했다. 이런 오해가 잦은지 익숙하게 품에서 경찰증을 꺼내 보인 남자가 이내 아이들과 함께 고개를 꾸벅이고는 그들의 손을 잡고 뒤돌았다.
"한쵸는 학교에서나 밖에서나 싸우지 말란 소리만 하네."
"그걸 알면 제발 그만 좀 싸워라. 너네가 애들보다 더 말 안 들어."
"싸운 건 한 번 아닌가? 나머지는 뭐-"
"대련이지."
"그러취~ 아, 근데 생각보다 놀이 기구들이 시시한데. 차라리 하기 차가 더 재밌겠다. 안 그래, 제로?"
"아까 범퍼카로 레이싱한 놈이 그게 할 말이냐?"
"다음엔 서킷에 가볼까? 저번에 그거, 한 번만 더 보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로. 그런 데서 하기와라처럼 운전하면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까?"
"그게 그렇게 쉬운 기술이 아니거든요~ 무게중심이 조금만 흔들려도 전복된다고?"
"한쵸가 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냐?"
"오."
"오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고 뭐 먹을지나 골라. 이거 먹고 관람차 타러 가자며."
"이것도 진페짱 찬스?"
"새끼 작작해라, 진짜."
"싸우지 말라고!!"
저 멀리까지 달려나가 싸워대는 두 사람이 곧 정식 경찰로서 근무할 놈들이라고 생각하니 다테의 머리가 잠시 아찔해졌다. 그러나 지난 사건들을 떠올려보면 그의 친구들은 매 순간 정의로웠고, 충분히 명예로웠으므로 그 이상으로 불안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좇는 것을 향해 앞뒤 가리지 않고 불나방처럼 덤벼들 것이 훨씬 더 걱정스러웠다.
*
"오, 관람차 꽤 크네."
"이놈들이랑 관람차까지 타다니. 나탈리랑도 아직인데."
"그게 우리 탓이냐?"
"맞아. 여자친구랑 여태 유원지 데이트도 안 한 건 한쵸 잘못이지."
"제로, 뭐해?"
"히로, 저거 전부 몇 개 같아?"
"응? 글쎄? 얼핏 보기에도 엄청 많아 보이긴 하는데..."
"72개나 된다?"
"엣, 그렇게 많아?"
"1등은 그런 것도 외우고 다니는 거냐?"
"아니? 방금 센 건데. 쓸데도 없는 걸 왜 외워. 그러니까 밤을 새도 나를 못 이기는 거야, 마츠다."
"하? 두고 보자고. 초고속으로 승진해서 제로, 네 상사로 가서 괴롭혀주마."
"네에네에~ 폭발물 처리반부터 나오고 말씀하시죠, 기동대 나리?"
"그나저나 우리는 폭처, 한쵸는 형사과로 간댔고, 너네 둘은 어느 부서로- 어이. 저 녀석들 아까 그놈들이랑 한패 아냐?"
"어디?"
"지금 관람차 타고 있는. 온통 까만 옷에 짧은 머리 여자랑 선글라스에 모자 쓴 남자."
"글쎄. 옷차림만으로 뭘 특정하기는 힘들지. 그리고 한패라니, 그 사람들도 행동거지가 그래서 그렇지 범죄자인지는 모를 일이고."
"아무리 봐도 수상한데."
"그냥 신나보이는구만 뭐. 오니즈카 교관님이 졸업식까지만이라도 제발 사고 좀 치지 말라고 하신 거 기억 안 나냐. 오늘은 그냥 놀자고."
"뭐, 그래... 반장 말 들어야지."
"고오맙다, 이놈아. 아까 뛰쳐나갔을 때도 생각해 주지 그랬냐."
"그건 하기 때문이니까 하기한테 잔소리하라고."
"너네 때문에 늙는다, 진짜..."
*
관람차를 타고 내려오니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다섯이 함께 있다 보면 늘 하루가 금방 사라졌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언제 이렇게 됐는지 벌써 봄을 앞두고 있었다. 제각각의 이유로 모여, 하나의 꿈을 품게 된 청년들이 출구를 향해 받을 디뎠다.
이제는 각자의 꽃망울을 피우게 되겠지만 함께 쌓은 시간은 수많은 가지가 되어 언제까지고 그들을 단단히 이어주고 있으리라. 사람들의 감탄과 박수 소리에도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는 그들의 뒤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꽃이 이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