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iary
written by. 영사원
사람의 온기라곤 느껴지지 않던 공간엔 오랜만에 사람의 온기가 감돌았다.
"집을 너무 오래 비운 것 같기도 하고, 먼지도 좀 쌓인 것 같은데, 오랜만에 청소나 하자."
직업이 직업인지라 집에 많은 짐을 둘 수 없었다. 까마귀 떼가 갑자기 들이닥쳐 집을 헤지다가 직업을 유추할 수 있는 개인적인 물건은 최대한 들여놓지 않았다. 그동안 잘 안 들어온 것을 티 내는 듯 가구 위에는 약간의 먼지가 쌓여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가구 위를 손가락으로 훑어본 후루야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로 앞치마와 청소 도구를 꺼내 들었다. 창고를 열었을 때 알 수 없는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이런 상자가 언제부터 있었지?"
후루야는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뜯지 않은 걸 보니 이사할 때 포장 해두곤 아직 안 열어본 것 같은데….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 상자의 출처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상자에 붙은 테이프를 뜯어냈다.
"..."
후루야는 무언가를 눈치챈 듯 상자를 다급하게 열었다. 그 안에는 경찰 학교 시절 사진과 약간의 밴드 그리고 다이어리 몇 권이 들어있었다. 22살이 됐을 때 경찰 학교 입학 기념으로 다이어리를 하나 구매했다. 졸업 이후로도 한 몇 년 꾸준히 쓰다가 어느 순간부터 안 쓰게 되었지만. 이게 아직도 남아있다니 신기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홀린 듯 맨 밑에 있던 다이어리 하나를 꺼냈다. 아마 그 다이어리는 입학하면서 산 다이어리 같았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마츠다와 싸웠던 날, 반장과 편의점에 갇혔던 날, 마츠다 RX-7을 시원하게 긁은 날, 히로를 트라우마에 갇히게 한 범인을 잡은 날과 사소한 훈련과 식단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적혀있었다. 오래된 종이 내음이 코끝을 맴돌며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그 날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여름의 끝자락인 8월의 어느 금요일. 모든 일은 마츠다가 농담으로 한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우리 내일 바다나 갈래?"
"그럴까? 우리 맨날 도쿄에만 있었잖아."
하기가 한술 더 뜨며 히로와 반장 그리고 나를 부추겼다.
"바다까진 어떻게 가려고? 우리 운전도 못 하잖아."
"기차 타고 가면 되지, 어떻게든 갈 방법은 있어."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마츠다가 전날 통보식으로 ‘정문에서 6시 30분까지 만나. 늦은 사람이 야키소바 빵 사주는 걸로. 아, 그리고 옷 한 벌씩 챙겨라!’라고 말했다. 물론 나와 히로, 반장은 일찌감치 도착해서 여유롭게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30분 정각에 맞춰서 등장했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
“미안, 마츠다가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려고 해서-.”
“그래도 안 늦었으니깐 된 거지-, 자 가자!”
마츠다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한쪽 어깨에 메고 있는 더플백이 바닥과 점점 가까워지는지도 모르고 저 멀리까지 뛰어갔다. 이 네 명 중 아무도 정확한 목적지를 모르고 있다. 여기서 마츠다를 놓치면 큰일 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마츠다의 속도에 맞춰 빠르게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기차역까지 원래 평소처럼 걸으면 10분 정도 걸렸지만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 덕분에 5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느긋하게 기차표를 끊고 기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 기차는 일찍 도착했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타지 않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세 번의 기차 환승과 2시간이라는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유이가하마 해수욕장’이었다. 도착하니 시간은 9시 30분을 향했고 어두웠던 하늘은 점점 밝은 빛을 띠고 있었다. 다들 놀고 싶은 마음보다는 배고픈 마음이 컸는지 먹을 것을 먼저 찾고있었다.
“일단 편의점 가서 간단하게 때울까?”
“괜찮을 것 같은데? 다들 어때?”
“좋아, 근처에 편의점 있으니깐 편의점부터 가자.”
반장이 편의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역시 놀기 전에 든든하게 먹어야지 놀 때도 잘 놀지.”
하기가 한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마츠다와 하기는 어린아이처럼 ‘누가 먼저 편의점에 도착하나-.’라는 내기를 걸고 미친 듯이 편의점 쪽으로 달렸다. 히로가 뛰다가 다친다고 말리려고 했지만 이미 저 멀리 가버린 상태라 안 들렸겠지만. 편의점에 도착했더니 하기랑 마츠다는 이미 고른 것 같았고 우리도 빠르게 살 걸 사고 나왔다. 각자 고른 게 무색할 만큼 다들 자신이 산 것을 나눠 먹었다. 뭐, 그래서 더 든든하게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허기를 채우고 다시 본래 목적인 해수욕장으로 행했다.
마츠다와 하기, 히로는 예전에 잠깐 썼던 하기의 선글라스를 끼고 해변 쪽으로 걸어갔다. 나와 반장은 그냥 평소처럼 느긋하게 걸어갔고 앞에 걸어가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재빠르게 핸드폰으로 찍었다. 모두가 바다 앞에 섰고, 오묘한 기류가 흘렀다. 의외로 반장이 먼저 물을 뿌렸다. 그게 신호탄이 된 듯 단순하게 시작한 물싸움은 점점 격한 물싸움으로 번졌다. 과격한 물싸움의 결과는 마츠다 강제 입수로 끝이 났다.
“나 물에 던진 사람 누구야!”
소리 지르는 마츠다를 무시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히로와 함께 모래성을 쌓았다. 얼마 만에 이렇게 놀아보는 건지 기억도 잘 안 났다. 아니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느긋하게 모래성을 쌓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반장이 히로와 나의 팔을 잡고 바닷가 쪽으로 향했다.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놀아야지!”
반장의 손에 이끌려 바닷물에 강제로 발을 담갔다. 마츠다가 마침 잘 왔다며 이쪽으로 미친 듯이 물을 뿌렸다. 아까 걷어 올린 바짓단이 무색해질 정도로
“...”
다 젖었다.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보며 네 명은 웃기 시작했다. 나는 그 웃음에 답장하듯이 다시 물을 뿌렸다. 머리에서 흐르는 땀인지 물인지 모르는 액체를 닦아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잘 들리지 않아 누가 말한 것인지는 헷갈렸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곧 물에 던져지겠구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점점 근처를 잠식해가며 무섭게 다가왔다. ‘에라 모르겠다.’ 생각하고 눈을 한번 감았다 뜨니 공중에 붕- 뜨는 느낌이 들었다. ‘곧 빠지겠구나.’ 생각하기 무섭게 물에 빠졌다. 더운 날씨와 대비되는 차가운 물이 온몸을 감쌌다. 이상하게 즐거웠다. 이 순간과 친구들까지 전부. 전부 이상하리만큼 즐거웠다,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처럼. 해는 점점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와 하기, 마츠다, 반장은 흔한 돗자리도 없는 모랫바닥에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시원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히로는 어디 갔어?”
“먹을 것 좀 사 온다고 편의점 갔어.”
“오늘 진짜 재밌었다. 우리 다음에 또 오자.”
“아앙? 당연히 와야지! 너, 몰래 여자친구랑 오면 가만 안 둬!”
자세히 들어보면 유치한 말싸움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졌다. 하기와 마츠다는 폭발물 처리반으로 가는 것이 거의 확정 되었다. 그리고 우리도 곧 발령 나면 더 바빠져서 못 만나는 게 당연하다.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네 명은 나에게 더욱 특별한 존재였다. 이유는….
“얘들아, 나왔어.”
저 멀리서 히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천천히 뜨며 히로와 반장, 하기, 마츠다를 눈에 담았다. 이상한 직감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못 볼 것 같았다. 기분 나쁜 직감이었다. 애써 무시한 채 몸을 일으켜 앉았다. 마땅한 돗자리가 없어 편의점 봉지를 테이블 삼아 음식을 올려두었다. 각자 말했던 음식을 가져가고 그때 자리에 없었던 나는 자연스레 남은 것을 가져갔다. 먹느라 말이 없어지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근데 우리 곧 돌아가야 하지 않아.”
해는 점점 저물어가고 여기서 학교까지는 두 시간이 걸린다.
“지금 출발하는 게 낫지 않을까.”
“먹고 옷 갈아입고 출발하자.”
히로가 한 말을 기점으로 먹느라 말이 없어졌다. 다시 하늘을 올려봤을 땐 아까와는 다르게 오렌지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다들 다 먹었는지 쓰레기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가자!”
큰소리로 외친 마츠다가 앞장서며 기차역까지 이동했다. 기차는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고 다시 두 시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다들 피곤했는지 얼마 안 가 잠들었다. 잠든 얼굴 위로 붉은색 노을이 드리우며 기차는 바닷가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중간에 기차를 갈아타야 해서 전부 다 자면 난생처음 오는 곳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누구 한 명은 깨어있어야 하고 그게 나였던 것이었다.
“바다랑 정장…. 진짜 안 어울리네.”
교칙 상 어쩔 수 없는 정장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진짜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내려야 하는 역 바로 전 역에서 애들을 깨웠다. 다들 비몽사몽 한 상태였지만 나름 잘 따라왔다. 마지막 기차에서 잠깐 졸고 일어나니 시간은 벌써 두 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리고 아까와 다르게 느린 속도로 학교 앞에 도착했다.
“진페쨩, 진페쨩이 아니라 녹초쨩인가?”
하기가 마츠다를 놀리자 둘은 지치지도 않았는지 ‘아앙?’ 소리와 함께 저 멀리 달려갔다. 히로와 나는 거의 무의식에 걸음을 맡긴 채 걷고 있었고, 반장은 그런 우리를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해가 자취를 감추며 달이 떴고, 여름의 끝자락에 다녀온 바다는 제법 뜨거운 추억을 안겨주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하루가 끝이 나고 있었다.
그때의 바다 내음이 코끝을 맴도는 것 같았다. 꽤 오랜 시간 추억에 젖어있었다. 최근 들어 철야가 더 많아져서 거의 경시청에 살다시피 머물렀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휴식은 뒤로하고 청소와 여행 회상이라니. 언제 한번 휴가를 받는다면 그 해수욕장 다시 가는 것도
“꽤 괜찮을지도.”
살짝 웃은 후루야는 다이어리를 마지막 장으로 넘겼다. 공백으로 가득 찬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다 썼는지 다이어리를 덮으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다이어리는 다시 상자 깊숙한 곳에 넣어뒀다. 그리고 상자를 닫았다. 상자를 닫는 손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창밖을 보니 시간은 어느새 새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청소한다더니 추억여행이나 하고….”
달을 올려다보니 네 명이 생각났다. 생각을 지우려고 커튼을 쳤다. 이제 진짜 그때의 추억을 떠나보낼 시간이었다.
.
.
.
‘보고 싶다고 하기엔 너무 늦은 걸까.’
그리움이 가득 담긴 마지막 장이었다.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