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알차게 하루를 보내는 법
written by. YB
그 날은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평소처럼 아침 훈련을 하고, 수업을 듣고, 오후 수업까지 끝 마친 평화로운 날. 하지만 그 평화는 자신의 기숙사 방에 놓여있던 쪽지로 인해 끝이 났다.
'이 쪽지를 확인 즉시 처리하고 반장의 방으로 향하시오.'
후루야는 수업 도중 마츠다의 도발에 걸려들어 오니즈카 교관에게 불려갔다. 수업을 끝나고 오니즈카의 뒤를 따르는 자신을 비웃던 마츠다의 표정이 생생했다. 역시나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은 친구들은 이미 식당으로 향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저녁을 먹으러 자신도 식당으로 향했지만 익숙한 머리통 하나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 밥을 먹고 있던 같은 교장의 동기가 그들의 행방을 말해주었다.
"다테 반장이랑 다른 녀석들? 아, 그러고 보니 후루야가 오면 자기 방에 가보라고 전해 달랐어. 그 후엔 조리실에 들어가서 뭔가를 챙겨서 나가던데."
"그래? 알겠어. 식사 맛있게 해."
후루야는 그 말에 곧바로 식당을 빠져나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처음의 그 쪽지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방과 비교적 가까운 위치에 존재한 다테의 방으로 향했다. 물론 처리하라던 쪽지는 그대로 손에 쥐고 있었다. 다들 무슨 속셈이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꽉 닫힌 문을 두드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반장. 나 왔는데. ...저기요?"
가볍게 노크했다가 몇 초를 기다려도 아무 반응이 없길래 방을 따고 들어갈까 싶었다. 하지만 마츠다의 방도 아니고 반장의 방인데... 조금 망설여지는 순간 문이 조금 열리더니 손 하나가 삐죽 튀어나왔다.
"티켓을 보여주세요~"
목소리를 보니 하기와라였다. 그보다 티켓이라니 설마 이 쪽지는 아니겠지? 주먹 쥔 손을 펴 구겨진 쪽지를 미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도 하기와라의 손은 위아래로 움직이며 파닥거리고 있었다.
"티켓이 없으면 입장 불가입니다. 아쉽지만 후루야쨩은 돌아가야겠네."
"아니, 이거 맞지? 티켓이라는 거."
하기와라의 손에 쪽지를 올려주니 손이 방 안으로 쑥 들어갔다가 이내 오케이라는 손동작이 보였다.
"오케이! 입장 확인 완료! 조심히 들어와야 해 후루야 쨩."
그 말에 의문을 품었지만 일단 말대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물론 들어오자 마자 마츠다에게 팔이 당겨졌고 그 사이 하기와라는 문을 잘 닫았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
"쉬잇! 조용히 해 제로!"
마츠다는 후루야의 팔을 놓아주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진짜 뭐 하자는 건데. 불만 어린 표정이 가득한 후루야의 얼굴은 다테의 방을 한 번 둘러보고서 경악으로 바뀌었다.
저기 세팅되어있는 거 술이야?
후루야의 물음에 네 명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믿었던 반장과 히로마저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후루야의 경악 어린 시선에 모로후시는 뒷머리를 살짝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제안했어 제로. 이제 졸업도 얼마 안 남았고, 그 전에 특별한 추억 하나 정도는 만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야."
"히...히로?"
마츠다는 그대로 굳어버린 후루야를 톡톡 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제로 녀석. 진짜 굳어버렸군. 후루야는 계속되는 마츠다의 공격에 정신을 붙잡고 그와 동시에 마츠다의 멱살까지 붙잡았다.
"아니, 내 멱살은 왜 잡는 건데?!"
"마츠다! 네가 히로를 꼬드겼지? 히로가 이런 짓을 스스로 제안 할리가 없잖아!"
"뭐래는거야! 히로 나리가 자기 입으로 말한 거라니까?!"
점점 방이 시끄러워지자 하기와라와 다테가 능숙하게 둘을 떼어낸 뒤 자리에 앉혔다. 장정한 사내 다섯 명이 들어가기엔 좁은 방이었지만 이미 몇 번이나 들어와봤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후루야는 자신의 앞에 놓인 종이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안에서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린다. 히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종이컵을 바라보았다. 히로의 얼굴을 바라보았...
"내가 제안한 거 맞아 제로. 왜 그렇게 못 믿는 거야?"
계속되는 시선의 모로후시가 먼저 입을 열었다. 후루야는 정말이구나...히로가..그 히로가... 라고 중얼거리며 종이컵을 가볍게 흔들었다. 초점은 없는 모양이다.
"그냥 받아들여 후루야. 뭐 우리가 이러는 게 한 두 번이야?"
믿었던 반장마저도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게 보였다. 그래. 어쩌겠어. 납득해야지. 우리들이 한 번씩은 다 쳤던 사고를 히로라고 안 할까. 이미 며칠 전에 토모리를 검찰에 넘기고 재판까지 끝내지 않았던가. 그 후 히로의 분위기가 묘하다고 생각했더니 설마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을 줄은 몰랐지만.
"맞아! 이렇게 스케일이 큰일이 한두 번도 아닌 여러 번이면 일상이지 일상!"
"하기 녀석! 역시 뭘 잘 아네!! 좋아 마시자!"
"이것들아.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일이 일상으로 치부되는 거 맞아?"
후루야는 침대에 기대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한 하기와라와 마츠다를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후루야의 옆에서 모로후시와 다테는 그 동안 있었던 사건들을 떠올려보았다.
"맨 처음 마츠다랑 제로랑 싸운 거부터 시작해서 교관님 구출이나, 편의점 강도 체포나..."
"트럭으로 하늘을 날기도 하고 최근 모로후시의 사건과 그 밖에 자잘한 일들도 포함하면... 이 정도는 그냥 일상으로 치는 게 나을 수도."
그들은 새삼 반년도 안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수 많은 사고를 쳤다는 것을 상기했다. 후루야도 이제는 포기한 모양인지 놓았던 종이컵을 다시 들었다. 건배사는 다테가 했다. 다테는 이 자리를 만든 모로후시에게 하라고 했지만, 이런 일은 다섯 명 중 리더가 하는 거라며 떠넘겨졌다. 결국 다테는 목을 한 번 가다듬고는 외쳤다.
"벚꽃잎은?"
""" 다섯 잎이 하나!!! """
언젠가 다섯 명이 술자리를 가지면서 정해진 건배사였다. 다들 만족한 건지 지금까지 바뀌지 않고 이어져왔다. 서로의 종이컵이 부딪히며 찰랑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첫 잔은 역시 원샷인지 속속히 종이컵을 비우고 있었다. 모로후시는 안주도 준비해왔다며 작은 통에 뚜껑을 열어 그들 사이에 두었다.
생각보다 본격적인 자리에 후루야는 안주를 씹으며 물었다.
"그보다 술은 어떻게 들고 들어온 거야? 경비원이 막고 있잖아."
"아 그거? 하기와라와 모로후시의 팀플레이가 대단했지."
"인정. 나도 히로 나리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다테와 마츠다의 말에 모로후시의 귀가 살짝 달아올랐다.
"그렇게 말하면 뭔가 대단한 걸 한 것 같잖아..."
"아니아니, 어제 모로후시 쨩의 연기는 진짜 대단했다고. 맞춰주는 나도 속아버릴 정도였으니까!"
궁금해하는 후루야에 하기와라는 어제의 상황을 요약해서 설명해주었다. 일단 편의점에 가 술과 투명한 색의 음료를 사 온 후 몇 개는 음료로, 몇 개는 술을 넣은 채 돌아왔다고 한다. 당연히 경비원이 혹시라도 술을 반입하지 않나 의심했고 그때 모로후시가 한 건 했다고 한다. 하기와라는 모로후시의 연기에 맞춰주며 더욱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이끌었고.
그렇게 통과를 한 후엔 식당의 조리실로 향했다. 평소 야식을 만들러 자주 찾아왔기에 이모님들과도 매우 친숙한 관계였다. 넉살 좋은 하기와라와 일을 잘 도와주던 모로후시의 부탁에 그대로 냉장고에 술과 음료를 넣고 안주까지 만들어서 돌아왔다고 했다.
후루야는 어제 훈련실에서 웬일로 시비를 털지 않고 싸움으로 덤벼들던 마츠다를 떠올렸다. 자신 빼고 편의점 갔다 온 것에 화를 풀려 마츠다에게 대련을 신청했는데 좋다고 받아들인 것부터가 이상했어. 반장도 같이 참여한 것도 그렇고. 후루야는 그제야 그 둘이 자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부루퉁한 표정의 후루야를 보고 마츠다가 비웃었다. 고작 그거에 삐지냐? 네가 꼬맹이도 아니고! 하하하하!! 마츠다의 텐션이 이상하게 올라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마츠다는 술이 약했지? 후루야는 지금이 기회라는 듯 다테와 자리를 바꿔 마츠다의 옆자리로 갔다.
일단 주기만 하면 계속 마시는 걸 알기 때문에 빈 종이컵에 술을 따르고는 마츠다의 입에 고이 물려주었다. 하기와라도 동참했다. 참고로 하기와라는 술만 마시면 속이 별로라고 안주까지 물려주었다.
다테와 모로후시가 그런 둘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말릴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들도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간 상태라 평소의 정상적인 사고방식은 조금 무뎌져 있었다.
마츠다는 아무 경계도 없이 두 사람이 주는 것을 잘 받아먹었다. 얼마 마시지 않아 정신이 또렷한 하기와라나 원초부터 술에 강한 후루야는 그런 마츠다를 보며 이걸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웠다.
"아! 저번에 모로후시 쨩 카메라 쓰고 반장이 챙겨두지 않았었나?"
"아마 그랬을걸."
후루야와 하기와라는 대답을 요구하는 듯 다테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다테는 책상 밑 서랍장의 두 번째 칸을 가리키고는 그 안에 있다고 말했다. 하기와라는 바로 몸을 움직여 서랍장 안에서 모로후시의 카메라를 꺼냈다.
"자 진페이쨩. 이쪽 봐봐!"
하기와라가 무해한 듯 웃으며 말했다. 마츠다는 저 자식이 갑자기 왜 저렇게 웃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정확히 카메라를 바라보며 그 중얼거리는 모습이 찍혀버렸다. 옆에서 사진을 확인하던 후루야는 잘게 몸을 떨며 웃고, 다테와 모로후시도 피식 웃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짜증 난 마츠다는 하기와라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뺏어 자신이 대신해서 찍었다. 그렇게 카메라는 마츠다의 뒤를 이어 모로후시, 다테, 후루야까지 모두의 손을 거쳐 갔다.
카메라의 찍힌 사진을 확인한 후루야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만취한 마츠다는 죄다 초점이 빗나가 있고 몇 장은 심령사진 못지않게 호러틱하게 찍혀있었다. 모로후시는 원래 그들 중 사진 담당이라 잘 찍긴 했지만 그래도 몇 개는 초점이 빗나가긴 했다. 하기와라나 다테도 마찬가지였었다.
신나게 사진을 확인하던 후루야는 무언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듯 잠시 몸을 굳혔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아직 잠들지 않은 모로후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그랭...제로? 뭐..잊어버렸어..ㅇ?"
발음이 뭉개졌지만 다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그러게. 내가 뭘 잊어버렸을까... 후루야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그냥 잊어버린 채로 두기로 했다. 잊어버렸다면 그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었겠지.
"아무것도 아니야 히로. 졸리면 너도 자. 뒷정리는 내가 할게."
그럼..부탁행... 그대로 하기와라에게 기대어 쓰러진 모로후시에게 마츠다가 덮고 있던 다테의 이불을 덮어주었다. 순간 마츠다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무시했다.
후루야는 먼저 시간을 확인하기로 했다. 저녁은 6시까지고, 소등시간이 10시니깐...아직 3시간은 여유 있네. 분명 저녁과 관련된 뭔가가 있었지만 정리하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후루야는 잠든 친구들을 밟아가며 환기하랴, 빈 술 처리하랴, 쓰레기 치우랴 바쁘게 움직였다.
후루야가 잊어버렸던 것은 다음날 알게 되었다. 아침부터 오니즈카 교관에게 호출당한 다섯 명은 아침을 먹기도 전에 오니즈카에게로 향해야 했다.
그래도 다섯 명 모두 숙취는 적었기에 비교적 정상적이었다. 이 정도라면 휴일 아침에 호출한 교관에게 짜증 내는 학생 정도로 보였다. 술은 제일 마셨으면서 숙취는 제일 없는 마츠다는 머리 뒤로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내가 왜 휴일 아침부터 오니 공에게 가야 하냐고!"
"내가 아냐..."
"나도 모르는데."
대답은 전부 모른다였다. 그렇게 도착한 오니즈카의 앞에 선 다섯 명은 오니즈카가 뭐 때문에 불렀는지 궁금해졌다.
"후루야... 분명 내가 어제 저녁 식사 후 다섯 명 같이 찾아오라고 말했을 텐데."
오니즈카의 말에 후루야는 그제야 잊어버렸던 걸 떠올렸다. 아. 짧게 감탄사를 내뱉은 후루야에 오니즈카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제 곧 졸업한다고 벌써부터 빠진 건가. 하지만 곧 시작되는 마츠다와 후루야의 말다툼에 생각이 바뀌었다.
"어제 까먹은 게 이거였냐 제로?"
"너, 듣고 있었어?"
"그보다 오니 공이 부른 거였으면 말을 했어야지! 네가 까먹어서 휴일 아침부터 불려왔잖아!"
기운 넘치는 둘과 달리 조금 남아있는 숙취와 아침 잠을 충분히 취하지 못한 세 사람은 말릴 기운조차 없어 허허 웃으며 둘을 바라보기만 했다.
오늘은 웬일로 다른 셋이 말리지도 않으니 오니즈카는 더 피곤해졌다. 결국 극단의 조치로 샤워실 청소를 시키기로 했다. 저번에 이 녀석들이 한 게 깨끗하기도 했고 말이지.
오니즈카는 억울한 다섯 명의 외침을 들으며 자신의 사무실 밖으로 내보냈다. 저 녀석들은 말 안 듣는 게 무슨 일상이지 일상. 어찌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오니즈카에게 쫓겨난 다섯 명의 사내들은 일단 후루야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제 곧 졸업인데 또 샤워실 청소를 한다고? 후루야는 네 명의 시선의 어제 술만 마시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 말에 모로후시가 시무룩해져서 마츠다가 후루야를 질책했다.
그리곤 서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이 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미 몇 번 해봤으니 익숙할 테니. 그 말에 하기와라가 익숙하면 이상한 거라고 했지만 다들 신경 쓰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