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未濟
written by. 라포
다같이 드라이브를 가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 것 같다. 당연히 운전은 하기가, 나는 조수석, 제로와 반장, 히로는 뒷자석에 탔다. 늘 그랬듯 정해져있는 위치로. 우리들의 암묵적인 약속이었다. 흠집 하나라도 나면 큰일날 것 같은 흰색의 스포츠카가 누구의 소유인지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았다. 익숙한 모양새인걸 보며 아마 교관이겠거니 생각했다. 자주 빌렸으니까 세차 한번 해주면 넘어가줄지도 몰라. 그러자 제로가 내 말에 그래도 되는거냐며 웃었다. 오, 속으로 생각한 줄 알았는데 입 밖으로 내뱉었나보다.
점점 진해지는 노을과 텅 빈 도로. 이 넓은 길에 우리가 탄 차밖에 없다. 이게 다행인건지. 아무튼 드라이브를 하기엔 최적의 조건인가.
“진페쨩, ‘그거’ 할까?”
한참 달리고 있는 도중에 하기가 물었다. 나와 녀석이 드라이브를 할 때면 함께 즐겼던, 잘못하면 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묘기를 할 거냐고 묻는거였다. 하기는 그걸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좋다고 오케이 했을텐데,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안 할란다.”
“어? 웬일이야? 먼저 하자고 하는건 진페쨩이었잖아.”
“뭐.. 그냥. 엑셀도 지금까지 실컷 밟았으면 됐지.”
“너답지 않네. 아니면 이제 브레이크 쪽이 좋아진거야?”
그 녀석은 짖궂은 얼굴로 웃으며 주행 속도를 더 올리지도, 그렇다고 낮추지도 않고 계속 도로를 질주했다. 뒤에 탄 다른 녀석들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자기들끼리 정신없이 떠들기 바빴다.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중간에 낀 히로만 난처한 것 마냥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나는 뒷자석을 응시했다가, 창 밖의 전경을 구경했다가, 문득 이 차로 어디까지 갈지 궁금해졌다. 애초에 그런거 정하고 출발했었나. 하기한테 물어볼까.
“야, 하기. 우리 어디가는거냐?”
“글쎄다... 어디로 갔으면 좋겠는데?”
“뭐야, 내가 정해?”
“당연하지. 원래 운전자 옆에 탄 사람이 목적지를 정해주는거야.”
“핑계는. 너 나중가서 딴말하면 안된다.”
“알았어, 절대 안할게. 나야 진페쨩 가는데 항상 따라갔으니까 뭐든 괜찮을걸....”
...
그리고, 다음 대답을 돌려주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벽시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작게 들리고 있다. 조금 멍한 머리로도 금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아, 어쩐지. 모두가 이미 졸업한지 오래인데 경찰학교 시절 제복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그 녀석이 나랑 멀쩡히 드라이브나 하고 있을 리도 없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날짜와 시간부터 확인했다. 11월 4일, 오전 6시 20분. 원래는 폭발물처리반이었던 내가 강등되어 수사 1과 형사로 출근하게 된지 오늘로 4일째다.
*
담배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사건 경위서를 작성하다말고 왈가닥의 잔소리를 피해 잠시 밖으로 나왔다. 그래봤자 얼마 안가서 날 찾을테니 빨리 피우고 돌아가야겠지만. 능숙하게 필터에 불을 붙이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마츠다! 너도 이제 형사 일 하게 됐다면서? 거긴 좀 어때. 할만 해?]
반장의 전화였다. 수신 버튼을 누르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선명한 음성에, 이쪽이 현실이라는게 확 다가와서 괜히 머리만 긁적였다.
“..경찰 일이 다 거기서 거기지. 나쁘지 않아.”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한동안 각자 바빠서 연락도 잘 못했잖아.”
[하하. 그러게. 그냥 너 부서 이동했다길래 궁금해서 미리 연락했다. 흠, 그러고보니 그 녀석들 얼굴 본지도 꽤 된 것 같은데...]
“제로랑 히로? 확실히... 마지막으로 만났던게 6개월 전이네. ”
[뭐, 그래도 곧 하기와라 성묘니까 이번엔 다시 모일 수 있겠지. 아무튼 알았어. 성묘때 보자.]
“그래.”
전화를 끊고, 빨아들였던 담배 연기를 하늘에 대고 길게 내뱉었다.
*
졸업한지도 얼마되지 않았던, 하기의 잃어버린 인생을 어떻게 보상해줄지 생각하다 찾아낸 방법이 고작 복수였다. 물론 그 범인 자식을 잡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하기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아니.
사실은 그 녀석의 죽음에 내 탓도 있는 것 같아서.
하기가 날 따라올 것을 알면서도 말리지 못했다. 그러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큰 두려움과 걱정을 안고있던 녀석이었는데. 정말 괜찮냐고 한번이라도 물어봤어야 할까. 꿈에서조차도 물어보지 못했다.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괜찮을거라는, 신뢰가 담긴 그 덤덤한 말에 마주 웃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미안.
닿지않는 사과를 전해봤자 소용없다는 것도 알고있다. 설령 닿는다해도 그 녀석은 내가 왜 사과를 하냐며 웃을거다. 복수를 위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분명 그런것보다 나 자신을 위해 살라고 말할 게 뻔하다. 하기는 그런 녀석이니까. 그렇지만, 하기에 대한 복수가 곧 나를 위한거나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이게 맞는 일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걸 판단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
그냥 그 녀석과 다시 함께 웃고 싶다. 폭탄에 훼손되지 않은 멀쩡한 모습의 녀석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우리들이 가장 즐거웠던 시절로 돌아가서 걱정없이 떠들고 싶다.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들에 대해서.
그래서 나는 오늘도 녀석에게 의미없는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오늘 점심 완전 별로였어. 동료분들이 메뉴 정하는 센스가 꽝이더라고. 하기 넌 뭐 먹었냐?]
영원히 답장이 오지 않을 휴대폰을 손에 든 채, 반쯤 줄어든 담배를 구두로 비벼 끄고 경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